[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정부는 해외입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2029년 중단을 목표로 공적 입양체계의 정착을 추진하고 있다. 본 칼럼은 “중단” 자체보다 “중단 이후” 국내 보호·돌봄 역량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에 초점을 둔다. 필자 박동명은 전(前)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으로 재직하며 아동복지·아동보호 체계와 더불어 입양 관련 현안을 실무적으로 지원·검토해 온 바 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원가정 지원, 대체돌봄, 국내입양 제도, 과거 해외입양에 대한 사후 정의의 과제를 균형 있게 점검하고자 한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 해외입양 제도는 “생존의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73년이 지난 오늘, 해외입양은 더 이상 빈곤의 상징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가 아동보호의 기본책무를 충분히 수행했는지 되묻게 하는 거울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의 ‘선진국가’를 지향하는지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정부가 해외입양의 단계적 중단을 공식화한 것은 늦었지만 분명한 전환점이다. 정책브리핑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공적 입양체계를 정착시키는 한편 해외입양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해외입양을 멈춘다고 해서, “아동이 안전해지는 사회”가 자동으로 도착하지는 않는다. 중단은 결론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73년의 역사, 숫자 뒤에 숨은 그늘
해외입양의 역사에는 ‘숫자’가 남는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인용한 국내 주요 언론에 따르면 1958년부터 2024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 수는 약 17만 명으로, 국내 입양(약 8만2000명)의 두 배를 넘는다.
이 숫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입양 송출국”이라는 오명을 낳았고, 무엇보다 국가의 보호책임이 취약했던 시기를 증언한다.
더 무거운 대목은 절차의 왜곡과 인권침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보도 인용)에 따르면, 1960~1990년대 해외입양 과정에서 서류 조작, ‘고아’ 허위 기재, 아동 바꿔치기 등 중대한 권리침해가 확인되었고, 367건의 신청 중 최소 56명이 피해자로 인정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입양”이라는 이름이, 어떤 아이에게는 평생의 정체성 상처와 권리 박탈로 남았다는 뜻이다.
해외입양의 상처는 과거형이 아니다. 유엔 조사와 입양인 단체들은 기록 접근, 진상규명, 회복·보상, 재결합 지원 등 ‘구제수단’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해 왔다. 중단 정책은 이 비판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어야 한다.
단계적 중단의 의미, 그리고 제도적 전제
이번 전환의 핵심은 “민간 중심 → 공공 중심”이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7월부터 공적 입양체계를 도입했고, 10월에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을 비준했다고 밝히며, 공적 체계 안착과 함께 해외입양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했다.
국제 기준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입양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중심 원칙으로 삼고, 국외입양은 국내에서 적절한 보호가 어려운 경우에 고려되는 성격을 가진다. 헤이그 협약 역시 국외입양을 ‘대체돌봄의 마지막 선택지’로 두고, 국가 간 협력·절차 통제를 통해 아동매매·유괴 등 위험을 막도록 설계되어 있다.
요컨대 해외입양 ‘0명’은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가 국내 보호역량을 갖추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그 선언이 정책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중단은 “좋은 말”로 끝나고 현장은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우리의 대책: “중단 이후”를 설계하라
이제 필요한 것은 선의가 아니라 설계도이다. 다음 네 가지 축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첫째, 원가정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하는 ‘예방 복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해외입양은 종종 “양육 불가능”이라는 낙인에서 출발한다. 한부모·취약가정에 대한 주거, 소득, 돌봄, 심리 지원이 동시에 작동해야 ‘양육 포기’로 내몰리지 않는다. 정부도 위기아동 조기발견, 원가정 복귀 프로그램, 예방적 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핵심은 현장에서의 실행력이다. 지자체는 사례관리·주거연계·돌봄 인프라를 촘촘히 묶고, 중앙정부는 재정과 표준모델, 평가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아동보호는 시군구의 선의로 버티는 사업”이 아니라 국가정책이어야 한다.
둘째, 대체돌봄은 ‘시설 중심’이 아니라 ‘가정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정부는 가정위탁을 국가책임 체계로 개편하고 전문위탁 확대, 위탁부모 권한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옳다. 다만 예산·인력·훈련·사후지원이 따라가지 않으면 위탁은 확대되지 않는다. 특히 의료·발달·정서 지원이 필요한 아동은 ‘전문위탁’이 사실상 표준이 되어야 한다. 시설 보호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장기 수용”이 아니라 “가정 복귀 또는 가족형 돌봄으로의 이동”을 목표로 한 시간표를 가져야 한다.
셋째, 국내 입양은 ‘비밀’이 아니라 ‘권리 기반의 개방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국내 입양을 늘리자는 말은 쉽다. 그러나 당사자의 권리(알 권리, 기록 접근, 정체성)를 보장하지 않는 입양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개방형(열린) 입양과 입양 후 관계·정보 접근이 당사자의 심리적 적응과 만족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도 축적되어 있다.
‘열린 입양’은 단지 친생부모와의 만남을 강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최소한의 정보 투명성, 아동의 자기서사 형성, 위기 시 상담·중재 체계 등 “사후 지원이 포함된 입양”으로 재정의하자는 요구이다.
따라서 법원 심사 강화, 입양기관의 책임성, 입양가정 지원(상담·치료·교육·돌봄휴식), 그리고 무엇보다 입양기록의 보존·열람·정정 절차가 표준화되어야 한다.
넷째, 과거 해외입양의 ‘사후 정의’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여기서 '사후 정의'는 단순히 시간이 지난 뒤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일어난 잘못을 뒤늦게라도 바로잡기 위한 일련의 정의 실현 과정을 뜻한다
그래서 진실 규명과 기록 복원, 국가의 공식 사과, 피해자 지원은 “과거 정리”가 아니라 현재의 아동정책 신뢰를 세우는 기반이다. 해외입양 과정에서의 권리침해를 인정한 조사·보도는 이미 존재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기록 접근(언어 지원 포함)과 정정 절차의 실효성 확보
▷DNA 매칭·가족찾기 지원의 공공화
▷심리치유 및 법률지원(국적·체류 문제 포함)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감사와 책임 규명
이 과정이 있어야만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설득력을 얻는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나라’로 가는 길
해외입양의 단계적 중단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아동보호를 ‘가족의 책임’으로만 돌려왔는가, 아니면 국가의 책무로 받아들여 왔는가. 이제 답을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다.
2029년 해외입양 0명은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목표는 따로 있다. 아이의 삶이 행정의 공백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 아이가 태어난 곳에서 자신의 이름과 기록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위기 가정이 “포기” 대신 “지원”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이다.
해외입양을 멈추는 것으로 끝내지 말아야 한다. 멈춘 자리에서, 국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동 기본사회’라는 말에 실제 무게를 부여하는 길이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