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이후 서울 지역의 월세 매물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거래는 오히려 줄어들며 임대차 시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고정비 부담을 임대료에 반영한 집주인들의 전략이 수요자의 외면을 받으면서 ‘월세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2월 22일까지 서울의 월세 거래량은 1만955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만1404건) 대비 8.6% 감소한 수치다. 특히 월세 수요가 집중된 강남구는 같은 기간 거래량이 87.8% 급감하며 낙폭이 가장 컸다. 용산·동작·성동구 등 이른바 ‘한강벨트’ 지역 역시 9~48%의 감소세를 보였다.
거래와 달리 매물은 빠르게 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서울의 월세 매물은 2만1779건으로, 10월 16일(1만9712건) 대비 10.5% 증가했다. 강남구(6332건)를 비롯해 성동구(740건), 영등포구(625건), 마포구(572건) 등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매물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10월 중순까지 2만 건 이하에 머물던 월세 매물은 같은 달 22일 2만146건으로 늘어난 뒤, 11월 12일에는 2만2000건을 넘어섰다. 이후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업계는 매물 증가에도 거래가 줄어드는 원인으로 ‘임대료 급등’을 지목한다. 월세는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인 데다 계약 기간도 1년 이상인 경우가 많아 세입자 부담이 크다. 전세 대비 주거 안정성이 낮고, 가격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계약을 미루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는 “최근 전세에서 월세로의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이는 임대인이 종합부동산세 등 세 부담을 월세에 전가한 결과”라며 “집값 상승에 따른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이전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실질적인 ‘월세난’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세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월세 가격마저 조정되지 않으면, 세입자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윤홍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임차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과 시장에 나온 월세 간 괴리가 크면 거래는 성사되기 어렵다”며 “겉으로는 매물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거주 가능한 물건은 줄어드는 월세난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월세 시장의 혼란이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세금 정책, 공급 구조, 수요자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거래 위축이 불가피한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세입자 보호와 임대인의 부담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