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블랙코미디지만, 웃을 수 없는 현실을 담고 있다. 제지 회사에서 25년간 근무한 전문가 '만수'(이병헌)는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는다. 아내와 두 아이, 갓 장만한 집. 모든 게 완벽했던 중산층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재취업뿐. 하지만 같은 분야의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자들은 넘쳐난다. 결국 만수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 영화는 이 잔혹한 블랙코미디를 통해 우리 시대의 생존 방식을 묻는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기자로 일하기 전에 홍보업을 했던 시절 인쇄소와 자주 일을 했다. 그래서, 인쇄업계가 얼마나 빠르게 줄어드는지 체감한다. 디지털 전환의 물결 속에서 종이 인쇄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최근엔 AI의 급속한 성장으로 자신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지인들이 부쩍 늘었다. 디자이너는 AI 생성 이미지에 밀리고, 번역가는 챗GPT에 대체되며, 콜센터 직원은 AI 챗으로 교체되고 있다. 영화 속 만수처럼, 20년, 30년 한 분야에서 일해온 전문가들이 하루아침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시대다.
20세기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이런 현상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낡은 기술과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증기기관이 마차를 대체했고, 자동차가 마부의 일자리를 없앴으며, 스마트폰이 필름 카메라 산업을 무너뜨렸다. 역사는 늘 이렇게 반복되어 왔다. 슘페터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자 성장 동력이라고 보았다. 문제는, 그 '파괴'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생존이다.
영화 속 만수는 기존의 것을 고수한다. 제지 업계에서만 25년을 일했던 그는 다른 분야로의 전환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의 선택은 경쟁자 제거라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첫째, 기존 산업을 고수하되 혁신하는 것이다. 인쇄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인쇄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단순 인쇄소에서 소량 맞춤형 인쇄, 친환경 패키징, 디지털과 결합한 융합 인쇄로 전환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살아남고 있다. 기존 기술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 이것이 창조적 파괴 시대의 첫 번째 생존법이다.
둘째,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AI 시대에 AI를 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도구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AI를 활용한 업무 자동화, AI 기반 데이터 분석, AI 콘텐츠 제작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만수처럼 좁아진 일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살아남는 건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처럼 자본이 많지 않기에, 오히려 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인쇄소는 디지털 전환을 받아들여 온디맨드 출판 플랫폼이 될 수 있고, 제조업은 스마트 팩토리로 진화할 수 있으며, 전통 상권의 자영업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O4O(Online for Offline) 전략으로 재기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면서 적극적으로 변화 속에서 나만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경쟁 자체가 불필요한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아마도 평생 공부라는 이야기가 여기에 맞지 않나 생각된다.
영화가 던진 질문, 우리의 답은?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를 통해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창조적 파괴의 시대에서 파괴되는 쪽인가, 창조하는 쪽인가?
만수의 선택은 극단적이지만, 우리 역시 매일 그와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점점 좁아지는 시장에서 소모전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슘페터의 이론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창조적 파괴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파괴의 대상이 될지, 창조의 주체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중소기업이야말로 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다.
영화 속 만수가 경쟁자 제거라는 극단을 택했다면, 우리는 혁신과 적응이라는 정석을 택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 2026년은 ‘어쩔수가 없다’라며 죽는 중소기업과 살아남는 중소기업이 극명의 차이를 보여지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당신은 어떤 ‘어쩔수가 없다’를 선택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