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왜 분노하고, 다시 돌아오는가
― 욕망·통제·귀환으로 반복되는 인간 보편의 공식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이 없으면 문명도 없다. 야망이 도시를 만들었고, 갈망이 기술을 발전시켰다. 문제는 욕망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욕망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은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질서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을 관리함으로써 사회를 유지하는 존재다. 욕망은 에너지이고, 통제는 방향이다. 방향 없는 에너지는 반드시 폭발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서사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무엇을 갖고 싶다는 생각,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무엇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욕망은 서사의 연료다. 그러나 이 연료는 통제되지 않는 순간 파괴적이 된다. 욕망은 언제나 ‘더’를 요구하고, 인간은 언제나 ‘충분함’을 모른다. 이 지점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욕망이 통제될 때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기능한다. 규칙, 제도, 윤리, 자제력은 욕망을 억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욕망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통제는 욕망의 적이 아니다. 통제는 욕망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다.
그러나 통제가 무너지는 순간, 욕망은 분노로 변질된다.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분노는 좌절된 욕망이 외부를 향해 폭발하는 상태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분노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세계가 무너질 때 분노한다. 분노는 세계에 대한 기대가 배반당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 영혼을 이성, 기개, 욕망으로 구분했다. 이성이 욕망을 조율하지 못할 때 기개가 폭주하고, 그 상태가 바로 분노라고 보았다. 이 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분노는 악이 아니다. 분노는 신호다. 통제가 실패했다는 경고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과잉 성취 욕망은 번아웃을 낳고, 비교에 중독된 욕망은 피해의식을 만든다. 사회와 국가는 더 명확하다. 과잉 성장, 과잉 경쟁, 과잉 이념은 언제나 집단적 분노로 귀결됐다. 분노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무너진 질서의 부산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 서사에서 분노의 끝이 완전한 파멸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귀환이 존재한다. 집으로 돌아오거나, 본래의 가치로 회복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귀환은 이야기의 보너스가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파괴를 경험하기 전까지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 잃어본 뒤에야 비로소 가치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귀환은 패배가 아니다. 귀환은 인식의 결과다. 인간은 실패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이해한다. 분노가 모든 것을 태운 뒤에야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과대평가했고, 무엇을 과소평가했는지 깨닫는다.
고대 서사에서 영웅은 반드시 방황한 뒤 돌아온다. 돌아오지 못하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귀환은 속죄이며 재구성이다. 이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가지만, 이전과 같은 인간은 아니다. 귀환은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라, 인식의 진화다.
현대 사회는 이 서사를 가장 빠른 속도로 반복하고 있다. 성공과 효율, 성취에 대한 욕망은 극대화됐고, 통제 장치는 느슨해졌다. 분노는 일상 언어가 됐다. 개인은 쉽게 격분하고, 사회는 상시적으로 들끓는다. 그 끝에서 사람들은 다시 ‘본질’을 말한다. 관계, 공동체, 의미, 인간다움이라는 단어들이 다시 소환된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귀환의 반복이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하고, 늘 같은 방식으로 돌아온다. 기술은 변했지만 인간의 내면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의 이야기는 늘 비슷하다.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분노하고, 다시 돌아오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며, 통제에 실패하는 존재이고, 끝내 성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귀환은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인간의 서사는 끝나지 않는다. 욕망은 다시 고개를 들 것이고, 통제는 다시 시험받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분노와 귀환이 반복될 것이다. 그 반복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자신을 이해해 간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은 계속 이야기를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