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증서보다 무거웠던 한 문장
“이제 뭐 하실 겁니까?”
퇴임식이 끝난 뒤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지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공무원’이라는 명함은 나를 설명해 주는 가장 간단한 문장이었다. 그 명함이 사라진 날, 사람은 갑자기 자유로워지기보다 막막해진다. 매일 출근하던 시간, 반복되던 보고서, 결재 도장 소리까지 사라진 자리에는 예상보다 큰 공백이 남았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래 묵혀 두었던 메모장이었다. 회의 중 적어 두었던 생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 정책 뒤편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글이 되어 나왔다. 처음엔 일기였고, 나중엔 에세이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원고’가 되었다. 도장을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은퇴 후 작가가 되었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계획된 전직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 변화였다.
공무원 은퇴 이후의 시간은 왜 길고 깊은가
공무원 은퇴는 다른 직업군보다 이른 편도, 늦은 편도 아니다. 그러나 공직이라는 특성상 조직의 리듬에 오래 몸을 맞춰 온 탓에 은퇴 이후의 시간은 유난히 낯설다. 정해진 역할, 명확한 책임, 분명한 위계가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선택만 남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많은 이들이 강의, 자문, 봉사활동을 택하지만, 글쓰기는 조금 다른 성격의 선택이다. 글은 혼자서 시작해야 하고, 결과는 느리게 나타난다. 대신 글은 경력을 가장 온전히 보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직에서 다뤘던 정책, 제도, 사람, 갈등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자산이다.
특히 행정 경험은 기록으로 전환되기 쉽다. 공문서 작성으로 단련된 문장력, 논리 전개 방식, 사실 확인 습관은 작가에게 필수적인 기초 체력이다. 그래서 공무원 출신 작가들은 의외로 많고, 은퇴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문단의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차분히 풀어낸다. 독자 역시 그런 글에 신뢰를 보낸다.
은퇴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들
출판 편집자들은 공무원 출신 작가에 대해 공통된 평가를 내린다. “이야기가 쌓여 있다.” 젊은 작가들이 상상과 취재로 채워야 할 부분을, 이들은 실제 경험으로 채운다. 정책 현장의 긴장, 민원인의 표정, 조직 내부의 딜레마는 꾸며낼 수 없는 서사다.
반면 현실적인 어려움도 분명하다. 문단 네트워크가 약하고, 디지털 플랫폼 활용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한다. 블로그, 브런치, 전자책 같은 새로운 경로를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공무원스럽다’는 선입견을 경계해야 한다.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설명적인 글은 독자의 호흡을 놓치기 쉽다.
그럼에도 은퇴 작가들의 강점은 꾸준함이다. 시간 관리에 익숙하고,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인내력이 있다. 하루에 몇 줄이라도 쓰는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은 결국 한 권의 책에 도달한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글쓰기를 ‘단기 성과’가 아닌 ‘중장기 생계 보조 혹은 정체성 회복’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조언한다.

은퇴 후 글쓰기가 직업이 되기까지
글쓰기가 직업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정기적인 생산이다. 영감에 기대기보다 일정한 분량을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 둘째, 독자를 의식한 글쓰기다. 나만의 기록에서 벗어나, 타인의 질문에 답하는 글로 확장해야 한다. 셋째, 유통 경로의 확보이다.
출판만이 답은 아니다. 칼럼 기고, 공공기관 사보, 정책 해설서, 회고록 대필, 강연 연계 콘텐츠 등 글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실제로 많은 은퇴 작가들이 ‘전업 작가’보다는 ‘글을 기반으로 한 복합 활동’을 한다. 이 방식은 수입의 변동성을 줄이고, 경험을 계속 갱신하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은퇴를 글쓰기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재정의하는 태도다. 공직에서 쌓은 전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표현 방식이 바뀔 뿐이다. 보고서의 문장이 독자의 언어로 옮겨질 때, 그 글은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당신의 경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무원 은퇴 후 작가로 산다는 것은 유명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오래 쓰는 삶에 가깝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말해 보지 못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라 가장 솔직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도장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당신의 문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력은 이미 하나의 책 분량이다. 남은 일은 그것을 어떻게 꺼내 놓느냐뿐이다. 오늘 메모장에 한 문장을 적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문장이 언젠가 누군가의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다.
은퇴 후 글쓰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공개 플랫폼에 짧은 글부터 올려 보길 권한다. 글쓰기 관련 강의나 출판 커뮤니티를 찾아보고, 작가들의 실제 경험담을 읽어 보라. 더 많은 정보와 사례가 필요하다면 국내 출판 플랫폼과 작가 커뮤니티 웹사이트를 검색해 직접 탐색해 보라.
글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