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흩어진 백성, 다시 모이다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혼란의 시대였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무너졌고, 남유다는 위태로운 균열 위에 서 있었다. 지도자들은 부패했고, 정의는 무너졌으며, 예루살렘조차 안전하지 않았다. 백성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신앙은 절망 앞에 흔들렸다.
그러나 미가 4장은 이 절망의 한가운데서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하나님은 흩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다시 모으시는 분이라 선언했다. 역사는 인간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경영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이 장 전체를 관통했다.
미가 4장 1–3절에서 시온은 더 이상 지역적 성소가 아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질서의 중심이 된다. 놀라운 점은 이 중심으로 이스라엘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열방이 몰려온다는 사실이다. 이는 배타적 구원이 아니라 초대의 통치였다.
열방은 무기를 들고 오지 않았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 올라왔다. 하나님의 통치는 군사력이나 정치력으로 확장되지 않았다. 진리와 공의가 사람들을 움직였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장면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선언이었다.
4–7절에서 하나님은 흩어진 이유를 명확히 짚었다. 절뚝거리는 자, 쫓겨난 자, 환난을 당한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실패자이자 주변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자로 삼았다.
하나님의 회복은 강자의 재집결이 아니었다. 상한 자의 회복이었다. 이는 인간 정치와 전혀 다른 방식이다. 하나님은 약함을 통해 역사를 다시 시작했다. 미가는 이를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의 통치 방식이라 불렀다.
8–10절에서 시온은 다시 고통을 겪는다. 포로가 되고, 성읍을 떠나 들에 거하며, 바벨론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이 고난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정하신 여정의 일부였다.
미가는 고난을 숨기지 않았다. 동시에 고난의 끝도 분명히 말했다. 하나님은 거기서 속량하신다. 고통은 공백이 아니라 전환기였다. 신앙은 이 전환기를 견디는 힘이다.
11–13절에서 상황은 다시 반전된다. 열방은 시온을 조롱하며 몰려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의 도구가 아니라 심판의 대상으로 세웠다.
타작마당의 이미지는 분명했다. 흩어진 곡식이 모이고,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진다. 이는 폭력적 보복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역사 마지막에서 방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미가 4장은 묻는다. 지금 흩어져 있는가. 무너졌는가. 약해졌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끝인가.
미가의 대답은 분명했다. 하나님은 흩어진 자를 다시 모으는 분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회복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앙은 상황을 부정하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역사를 경영하고 있음을 믿는 태도다.
오늘의 신앙인에게 미가 4장은 위로이자 도전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