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유순] 환구단(圜丘壇)의 기억

▲정유순/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서울 중구 소공동,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도심 한복판에 이질적인 풍경 하나가 숨어 있다. 화려한 조선호텔 마당 한구석, 육중한 빌딩 숲에 포위된 채 낮은 숨을 몰아쉬는 팔각지붕의 전각. 바로 사적 제157호 환구단(圜丘壇)의 남겨진 유산, 황궁우(皇穹宇). 무심한 행인들은 이곳을 호텔의 부속 정원쯤으로 여기며 지나치지만, 이 좁은 터는 사실 120여 년 전 한 제국이 태동하며 내질렀던 첫 함성이 새겨진 혈처(穴處).


환구단이 들어선 소공동(小公洞)은 그 이름부터 우리 역사의 굴곡을 품고 있다.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의 집이 있어 작은 공주골이라 불리던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의 주둔지로 전락하는 치욕을 겪었다. 왜군이 물러간 뒤엔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영빈소인 남별궁(南別宮)이 되었다. 수백 년간 이곳은 거대 제국을 섬겨야 했던 변방 소국의 숙명을 상징하는, 이른바 사대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1897, 고종황제는 바로 이 치욕과 굴종의 자리를 뒤엎고 대한제국의 기틀을 세웠다. 을미사변으로 국모를 잃고 아관파천의 굴욕을 견뎌야 했던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고종은 더 이상 제후국이 아닌 독립된 황제국임을 선포하고자 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자는 오직 천자(天子)이라는 동양의 오래된 질서 아래, 고종은 남별궁 터에 환구단을 쌓았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철학에 따라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린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연호를 광무(光武)라 하고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선포한 순간, 이곳은 사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자주독립의 기치를 세운 성지가 되었고, 빌딩 숲에 갇힌 대한제국의 심장이 되었다.


그러나 제국의 꿈은 짧았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환구단을 정조준했다. “조선의 왕이 감히 하늘에 제를 지내는 것은 천조대신에 대한 불충이라는 오만한 논리를 내세워 1913년 환구단을 강제 철거했다. 그들이 제단이 있던 성스러운 자리에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조선경성철도호텔이었다. 황제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신성한 땅을 누군가가 잠을 자고 먹고 마시는 유흥의 공간으로 전락시킨 것은, 우리 민족의 영적 중심을 파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더욱 뼈아픈 것은 명칭의 왜곡이다. 일제는 독립과 자존의 의미가 담긴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다시 조선으로 격하시켰다. 총독부의 이름을 조선총독부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구단 터에 들어선 반도호텔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서 어디에도 쓰인 적 없던 반도(半島)’라는 용어는 우리 민족을 대륙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고립된 존재로 가두려는 식민 사관의 산물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이 명칭들에 담긴 비하의 의도를 시나브로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환구단의 수난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제국의 정문은 행방불명되었고, 환구단 터에는 또다시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섰다. 그러다 2007, 우이동의 한 호텔 옛터에서 환구단의 정문이 기적처럼 발견되었다. 호텔의 정문으로 쓰이던 건물이 사실은 제국의 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문화유산이 처했던 서글픈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2009, 이 문이 다시 소공동 언저리로 돌아오고, 2008100여 년 만에 환구대제가 복원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기억의 복원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황궁우 옆에는 석고(石鼓) 세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제천 의례에 쓰였던 악기를 상징하는 이 돌북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용문양(龍紋樣)이 새겨져 있다. 비록 하늘을 울리던 제국의 북소리는 멈췄지만, 그 단단한 돌에 새겨진 기개만큼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오늘날 환구단은 거대 자본의 상징인 특급 호텔들에 포위되어 마치 박제된 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환구단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선포하며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자존심의 기록이다.


신축된 호텔들의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일제가 심어놓은 반도라는 좁은 틀을 우리는 진정으로 벗어났는가. 100여 년 전 환구단에서 타올랐던 자주독립의 불꽃은 지금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빛으로 남아 있는가. ‘환구단의 기억은 도심의 소음 속에 묻혀버릴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당당한 주권자로 살아가라고 다그치는 준엄한 역사의 회초리여야 한다.



▲황궁우 정면(필자 정유순 제공) ⓒ한국공공정책신문


瓦也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작성 2025.12.23 22:37 수정 2025.12.2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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