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유아실에서 마주한 감정 하나
지난 일요일, 우리 가족은 평소처럼 교회 유아실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작은 교회라 유아실에는 아이가 둘뿐이었다. 우리 아들과, 두 살 된 다른 집사님의 아기였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우리 아들이 이곳의 막내였는데, 이제는 막내 자리를 내어주었다.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사랑스러움 앞에서 떠오른 기억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의 모든 움직임은 사랑스러웠다. 휘청이는 걸음, 작은 손짓 하나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서 잠시 아이를 안아 ‘딩가딩가’ 하며 놀아주었다.
“아빠, 나도 해줘.”
아이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가만히 있던 아들이 다가와 말했다. “아빠, 나도 해줘.” 그 한마디에 마음속으로 질문이 떠올랐다. ‘아, 질투인가?’ 평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를 안아주자 자신도 안아달라고 했다.
귀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했다. 나는 아들을 안아 올렸고, 그제야 아이는 만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질투를 다시 바라보게 되다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질투는 종종 비교가 되고, 상처가 되며,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투가 많은 사람과는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아들이 보여준 질투는 달랐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려는 마음이 아니었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 관심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질투의 방향이 마음을 결정한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만 그 질투가 결핍에서 나오는지, 사랑에서 나오는지에 따라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미소 짓게 된다.
아들의 질투는 ‘기분 좋은 질투’였다. 사랑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감정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아이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에게서 배운 한 가지
아이를 통해 또 하나를 배운다. 감정은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질투마저도 마음의 신호로 읽어낼 수 있다면, 관계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타인의 질투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질투는 지금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질투는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날 유아실에서, 나는 아이의 질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다시 배웠다. 오늘도 그렇게, 일상 속 작은 장면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피할 수 없다면,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사랑에서 시작된 질투는 관계를 확인하게 하고, 마음을 잇게 만든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