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농어촌 기본소득, 재정 취약 지자체에 떠넘길 일 아니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박사는 한국정책연구원장으로서 지방의회 예산·정책연구 활동을 수행해 온 전문가이다지방재정의 지속가능성과 복지·생활SOC의 균형을 중심으로 현장 자문과 분석을 이어왔다

이번 칼럼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둘러싼 재원 분담 구조의 문제를 짚는다특히 재정 취약 지자체가 기존 복지와 필수 인프라 예산을 줄여 대응하는 위험을 경고한다국비 비율 상향, 재정력에 따른 차등 지원, 복지·SOC 잠식 방지 원칙의 제도화를 제안한다아울러 지방의회의 재정통제·성과평가 기능 강화가 정책 지속성의 관건임을 강조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둘러싸고 지방비 부담이 과도하다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소득의 취지와 지방소멸 대응의 절박함을 인정하더라도, 재정 설계가 잘못되면 기존 복지와 생활 SOC를 잠식하고 지방재정을 장기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농어촌 소멸 위기에 대한 특단의 정책이라는 설명 아래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을 2026~20272년간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현재 7개 군을 선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향후 10개 군 내외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논의하고 있다. 해당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 월 15만 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재원 구조이다. 국비 40%, 지방비 60%라는 매칭 방식이 기본 설계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는 이를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그러나 마중물이라는 표현은 현실의 지방재정 구조를 가볍게 만든다. 인구감소지역을 포함한 많은 군() 단위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10%대 초반에 머무는 것으로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어 왔고, 인구감소지역 상당수 시·군의 재정자립도가 20%를 밑도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런 조건에서 지방비 60%”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존 예산을 잘라 붙이는 대체 재원으로 작동하기 쉽다. 그 결과가 아동수당·농민수당 등 취약계층과 생활 기반 예산의 축소라면, 그 정책은 출발점에서부터 사회적 정당성을 잃는다.


 

국비 40% ‘마중물논리의 한계

 

정부는 지자체가 자발적 참여로 공모에 응했고 예산 확보 계획을 제출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행정 현장의 자발성은 종종 구조적 압력과 뒤섞인다. 인구감소지역이라는 낙인, 지역 소멸이라는 공포, “선정되지 않으면 더 뒤처진다는 정치·행정적 유인이 결합될 때, 공모 참여는 사실상 선택지가 좁아진다.


더구나 지방비 60% 안에서도 광역()과 기초()의 분담 비율이 제각각이면, 같은 제도라도 어느 지역은 버티고 어느 지역은 무너진다. 실제로 도비 분담률이 지역별로 달라 형평성 논란이 있었고, 국회 심의 과정에서 도와 군이 지방비를 반씩 부담하라는 조건이 제시되면서 접수 중단·재논의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다. 이후 “8개 도 중 7개 도가 예산의 30%를 도비로 부담하기로 했다는 후속 조정이 나왔지만, 이 과정 자체가 현행 설계가 현장 적합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재정 원칙: 보편급여가 기존 복지와 SOC를 잠식하면 실패이다

 

기본소득의 장점은 보편성이다. 그러나 보편급여가 취약계층 복지와 생활 인프라를 깎는 방식으로 구현되면, 그 보편성은 모두에게 조금, 약자에게는 더 큰 손실로 귀결된다. 특히 군 단위에서는 의료·교통·돌봄·주거 같은 생활 SOC가 취약하다. 이 영역은 단기간에 복구가 어렵고, 한 번 축소되면 주민의 체감 불편이 누적되어 오히려 인구 유출을 가속한다.

따라서 재원 조달의 최소 원칙은 선명해야 한다.

첫째, 기존 취약계층 복지와 최소 생활 SOC절대 훼손 금지영역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는 선언이 아니라 제도 장치로 구현되어야 한다. 예컨대 사업 참여 요건에 전년도 대비 필수 복지·필수 SOC 예산(또는 서비스량) 하락 금지를 넣고, 이를 위반하면 국비 지원 방식이 조정되거나 보완재원이 자동으로 연동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둘째, 추가 재원 확보 원칙을 전면에 두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비 비율 상향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다. 장기적으로는 중앙-지방 간 세입·세출 구조 조정, 교부세·보조금 구조의 합리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방이 스스로 조달할 수 없는 과제를 지방이 알아서 조달하라는 방식으로 추진하면, 이는 재정분권이 아니라 재정전가에 가깝다.

 

셋째, 재정력에 따른 차등 지원이 필요하다. 보조금 제도는 애초부터 사업 성격과 지역 여건에 따라 기준보조율을 달리 정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국고보조사업 전반에서도 기준보조율차등보조율논의는 오래된 과제이며, 광역-기초 간 부담비율을 재정력과 사업 특성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는 학술적 제안도 존재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같은 전국 단위 정책일수록, 그 원칙을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현금 지급만으로 지방소멸은 막히지 않는다: 성과지표를 먼저 세워야 한다

 

농어촌 기본소득이 정주(定住) 유인을 목표로 한다면, 평가는 소비 증가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실제로 연천 청산면의 사례를 두고도, 인구가 늘었다는 평가와, 통계 기간·범위에 따라 효과를 과장했다는 비판 보도가 함께 나오고 있다. 이 충돌은 기본소득 논쟁이 결국 증거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시범사업의 성패는 다음과 같은 지표로 판정해야 한다.

▷인구 유지: 전입·전출, 정주 지속기간, 청년·신혼 세대 비중

일자리: 고용률, 창업·폐업, 지역 특화산업 고용 변화

생활 기반: 통학·의료 접근, 대중교통, 돌봄·문화 서비스량

재정 지속가능성: 지방비 매칭이 다른 필수지출을 얼마나 대체했는지

 

기본소득은 단독 사업이 아니라 지역 산업 재편생활 SOC정주 여건 개선 패키지 속에서 기능해야 한다. 농업·관광·돌봄·재생에너지 등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 일자리 전략, 의료·교육·교통·디지털 인프라 확충, 청년·귀촌·고령층을 위한 주거·돌봄 체계가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본소득은 단기 소비를 자극한 뒤, 재정 부담과 정치적 갈등만 남길 위험이 크다.

 

법과 제도: “국가 정책이면 국가가 책임을 더 져야 한다

 

헌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한다고 규정한다. 또 지방의회를 두어 지방자치단체 운영의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 구조에서 중앙정부가 국가적 목표를 제시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재정 책임도 함께 설계해야 헌법상 지방자치 정신과 조화를 이룬다.

 

최근 일부 광역단체장이 중앙정부 정책 추진 시 지방정부와의 사전 협의 의무화, 일방적 재정 부담 전가 방지등을 담은 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바로 그 재정전가 방지원칙을 시험하는 사례이다.


 

지방의회 역할: ‘정책의 선의가 아니라 예산의 증거로 판단해야 한다

 

이 사안에서 지방의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지방의회는 기본소득 논쟁을 찬반 구호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다음을 예산 심의의 표준 절차로 만들어야 한다.

 

첫째, 재정영향평가를 실질화해야 한다. 법령에 근거한 지방재정영향평가 체계는 이미 존재한다. 기본소득 도입이 기존 복지·SOC를 얼마나 대체하는지, 중기재정계획을 어떻게 흔드는지, ‘증감의 근거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

 

둘째, 사전사후 성과평가를 결합해야 한다. “인구가 늘었다/줄었다는 논쟁을 끝내려면, 지표와 비교군(유사 지역) 설정, 평가 기간, 데이터 출처를 표준화해야 한다.

 

셋째, AI를 활용한 예산·성과 분석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는 자료 요구와 분석 역량에서 늘 인력·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사업별 예산서·결산서·성과지표를 구조화해 비교·추적하는 일은 디지털 기술과 분석 도구로 상당 부분 자동화할 수 있다. “정책이 주민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하게 만드는 것이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이다.

 

지방의 부담이 아니라 국가의 약속으로 재설계하라

 

농어촌 기본소득이 농어촌 주민의 삶을 지키는 제도라면, 그 출발점은 간단하다. 재정이 약한 지자체에 사업을 떠넘기지 말라. 국비 비율 상향, 재정력에 따른 차등 지원, 필수 복지·SOC 잠식 금지 장치, 광역기초 분담의 통일 원칙, 그리고 지방의회의 엄정한 재정통제 기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기본소득 논의의 진전은 지급액의 크기보다 설계의 방향에 달려 있다. 지방의 재정 현실을 직시하고, 농어촌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재원 구조와 종합 전략 속에서 기본소득을 재구성할 때, 이 제도는 단기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공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5.12.21 21:54 수정 2025.12.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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