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연말이 다가올수록 서민경제의 한숨이 깊어진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 외환위기 직전 수준으로 치솟았고, 생활물가 또한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금리 격차, 지정학적 불안 등이 겹치며 경제 전반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현재는 전통적 금융위기라기보다 물가와 양극화의 위기”라고 밝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이런 대외 악재가 국내 실물경제, 특히 자영업과 중소상공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커피 한 잔, 한 끼 식사비, 전기·가스요금까지 오른 지금,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있다. 매출이 준 자영업자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고민하고, 이로 인해 지역상권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버티기 장사’마저 버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외환 건전성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수입 물가 안정을 위한 단기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일시적 수급 조정 효과에 머물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나 공기업 자금을 이용한 시장 개입은 불가피할 때만 써야 할 수단이지, 지속적인 방어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단기 수습책보다 구조개혁과 성장 비전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물가 상승의 영향은 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은 소비를 줄여 버티지만, 저소득층은 생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고환율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이 전반적인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물가안정과 경기 부양을 병행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직 미흡하다. 서민경제를 보호할 근본적 대책—금융 지원, 임대료 안정 장치, 골목상권 경쟁력 강화—이 시급하다.
환율은 단순한 외환시장의 수치가 아니라 국가 신뢰의 바로미터다. 경제의 체질이 튼튼하고 정책의 방향이 명확할 때만 통화가치가 안정된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의존 모델에서 벗어나 내수기반을 강화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경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공정 경쟁과 지역 균형 발전을 토대로 한 산업정책이야말로 환율 안정의 근본적 기반이 된다.
고환율과 물가 양극화가 오래될수록 국민의 삶은 메말라 간다. 단기적 환율 방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의 정상화’,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지금이야말로 위기의 언덕을 함께 넘기 위한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