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을 지켜라 - 타락한 시대의 신앙 방어전
유다서 1장 1-16절은 단 한 장의 짧은 편지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강렬한 경고를 담고 있다. “믿음을 지키라”는 이 외침은 단지 과거 교회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도 유효하다. 당시 교회는 이미 ‘거짓 교사들’의 침투로 인해 복음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의 도구로 삼아, 경건을 잃은 삶을 합리화했다. 유다는 이런 현실 속에서 “한 번 전달된 믿음을 굳게 지키라”고 호소한다.
오늘날도 신앙은 유사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세속화된 문화, 물질주의적 가치관, 자기 중심적 신앙이 교회 안팎을 잠식하고 있다. 유다의 경고는 단지 비판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초대이다. 믿음의 본질을 다시 붙잡으라는 절박한 부름이다.
유다는 경고한다. “어떤 사람들이 몰래 들어왔나니 그들은 이 심판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이다.” (유다서 1:4)
거짓된 교사들은 겉으로는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욕망을 따랐다. 그들은 은혜를 ‘자유의 면허장’처럼 오용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다. 유다는 이러한 행태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경고는 오늘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리보다 인기를, 말씀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설교, 신앙을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태도는 모두 유다가 지적한 타락의 형태다.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순종이며, 은혜는 방종이 아니라 거룩의 힘이다.
유다는 타락한 천사, 소돔과 고모라, 가인의 길을 예로 든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와 질서를 넘어설 때, 심판이 시작되었다.
이 구절은 현대인에게 깊은 도전을 준다. 신앙의 자리, 사명의 자리, 겸손의 자리를 떠나 자아를 높이려는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거룩을 회복하신다.
따라서 신앙인은 언제나 자기 위치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에 있는가?’ 하는 물음이 바로 믿음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유다는 당시 교회의 모습을 “물 없는 구름, 열매 없는 나무, 죽어서 뿌리째 뽑힌 자들”로 묘사했다.
겉모습은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이 없는 신앙이었다.
그들은 은혜를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허가증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은혜는 죄의 면허장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힘이다.
오늘날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형식적 신앙’, ‘교회 문화의 소비자적 태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유다서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은혜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그 은혜조차 심판의 근거가 된다.
경건 없는 은혜는 거짓이고, 은혜 없는 경건은 율법이다. 믿음은 이 둘의 균형 위에 세워진다.
유다는 타락의 세대 속에서도 “자기를 사랑 안에서 지키라”고 말한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며 사랑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지만, 그 안에는 회복의 약속도 있다.
오늘의 교회와 신앙인은 이 경고를 심판의 메시지로만 듣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사랑의 부름으로 들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산다.
유다서 1장은 단 한 장으로도, 교회와 성도를 깊이 깨우는 하나님의 호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