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감 없는 사회, 존재의 부조리를 마주하다
— 알베르 까뮈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
공감이 사라진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사회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도 정작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인간의 거리를 좁힌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절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때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철학은 다시금 강렬하게 다가온다.
까뮈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세계의 무의미함을 통찰했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인 ‘부조리(Absurd)’는, 인간이 의미를 찾으려는 욕망과 세계가 응답하지 않는 침묵 사이의 간극이다.
이 철학은 단지 개인의 사유를 넘어, 오늘날 공감이 결여된 사회 구조의 문제를 꿰뚫는 렌즈로 기능한다.
까뮈가 남긴 질문은 단순하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 이 순간, 타인의 고통을 스크린 너머에서 소비하는 현대 사회에 가장 뼈아픈 성찰이 된다.
까뮈의 철학에서 ‘부조리’는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욕망과, 무의미하게 침묵하는 세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삶의 목적을 원하지만, 세계는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시지프 신화』에서 그는 이 부조리를 신화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시지프는 매번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 올리지만,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럼에도 시지프는 멈추지 않는다. 까뮈는 그 순간에 인간의 존엄을 본다.
즉, 세계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살아가는 것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증거다.
오늘날의 인간 역시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기술의 진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 관계는 얕고 기능적이다.
공감의 언어는 효율에 밀려 사라지고, 감정의 깊이는 데이터로 환산된다.
까뮈가 말한 부조리의 감정은 바로 이 현대인의 고독에서 되살아난다.
의미를 갈망하지만, 체계는 감정을 억압한다. 인간은 자기 내면과 세계 사이에서 점점 고립된다.
그러나 까뮈는 부조리 속에서도 인간이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를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자유롭다”고 했다.
세계가 주지 않는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의지, 그것이 곧 철학적 반항이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새 의미를 창조하는 내면의 공간이다.
이 인식이야말로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첫 번째 윤리적 선택이다.
『이방인』은 부조리 철학의 결정체이며, 공감이 결여된 사회의 잔혹한 단면을 드러낸다.
주인공 뫼르소는 감정의 틀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태양의 눈부심 속에서 사람을 살해한다.
사회는 그의 행동보다 ‘울지 않았던 사실’에 분노한다.
이 장면은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규범의 기준으로 재단되는 구조를 상징한다.
사회는 진심보다 ‘감정의 형식’을 요구하며,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이방인’으로 낙인찍는다.
오늘날 우리는 뫼르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SNS에서의 공감은 ‘좋아요’ 버튼으로 대체되었고, 타인의 아픔은 클릭 몇 번으로 소비된다.
공감이 인간적 이해가 아닌 사회적 수행이 되어버린 시대, 까뮈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공감의 부재는 사회 구조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효율과 경쟁이 인간관계를 대체하고, 감정의 진정성은 시스템의 틀 안에서 규격화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이 통계로만 존재하며, 개인의 감정은 수치화된 데이터에 불과하다.
까뮈는 이를 “사회가 인간을 도덕적 기계로 만드는 과정”이라 비판했다.
『이방인』의 재판 장면은 공감이 사라진 사회의 폭력을 상징한다.
재판은 진실을 찾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정상적인 감정’을 강요하는 연극이다.
사회는 뫼르소의 살인보다 ‘감정을 느끼지 않은 태도’를 죄악시하며 그를 처형한다.
결국 그는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자이자, 진실된 인간성의 상징이 된다.
까뮈는 이 메시지를 통해 “공감 없는 사회는 스스로의 인간성을 배반한다”고 선언한다.
까뮈의 철학에서 ‘반항(Revolt)’은 절망이 아니라 인간다운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적극적 행위다.
그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이 반항은 폭력이 아니라, 세계의 부조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의지다.
부조리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저항이다.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반항은 곧 ‘감정의 회복’이다.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끼고,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저항이다.
까뮈는 『페스트』에서 “진정한 영웅은 전염병과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했다.
이는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윤리적 행위의 은유다.
부조리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인간의 연대야말로 철학적 반항의 실천이다.
까뮈의 철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공감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은 절망이 아니라, 공감의 윤리를 선택해야 한다.
세계가 무의미하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까뮈의 철학은 ‘공감’이야말로 인간이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인공지능, 경쟁, 정보 과잉 속에서 인간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나 까뮈가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 믿음이 바로, 공감사회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