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 <세상이 우리를 바꾸기 전에>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01


“그는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지만, 세상은 늘 그보다 먼저 그를 바꾸고 있었다.”


2년 전 세상을 등진 폴 오스터는 그의 유작이 된 소설<4321>에서 퍼거슨의 혁명에 대한 믿음과 좌절을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미국 현대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었던 60년대 후반 반전과 민권을 외쳤던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베트남전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세대는 이제 늙어버린 것이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던 세대는 이미 세상에 의해 충분히 바뀌어 버린 세대가 되었다. 



원 배틀02


이 영화의 주인공 밥 퍼거슨-가명이지만 신기하게 <4321>의 주인공 성과 같다.-은 16년 전 무장 혁명 단체인 프렌치 75의 멤버로 폭탄 전문가였다. 그는 이 조직의 리더인 퍼피디아 베비리힐즈와의 사이에서 딸 윌라 퍼거슨을 낳아 기른다. 프렌치 75의 은행 강도 사건 때 퍼피디아가 잡히면서 조직은 와해되고 밥 퍼거슨은 박탄크로스로 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한때 혁명을 꿈꾸던 폭탄전문가는 마약과 술에 찌들고, 딸의 친구들에게 꼰대같이 구는 아저씨가 되었다. 밥은 딸이 집 밖에 나갈 때마다 피아식별 장치를 챙기게 하고, 핸드폰조차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들 부녀에게 16년 전 퍼피디아와 성적 관계를 맺었던 경찰 기동대 대장 스티븐 록조가 습격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이제 주인공 밥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마약과 술에 찌들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암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걸 기억해 내야 하는 변화이다. 폭탄으로 세상을 날려버려 새롭게 만들려고 했던 그에게 이 투쟁은 얼마나 초라한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암호의 답은 이 모든 아이러니를 요약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지배한다."  


원 배틀03


극렬 좌경 분자이자 테러리스트인 퍼피디아와 극우 파시즘 단체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스티븐 록조의 성적 관계는 반전운동을 이끌었던 히피 세대들의 자유로운 성관계에 기인한다. 이들은 성적 욕망을 해결하려는 공통점으로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자신만이 중요한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퍼피디아는 사실혼 관계인 밥을 배신하고 조직원들을 밀고한다. 록조 역시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혈육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에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은 양극단을 대표하는 세대이자 이제는 한불간 부모 세대이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윌라는 그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이 혼자 일어서야 한다. 윌라에게 있어서 전투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파도가 치는 형태와 비슷한 도로에서 합기도 스승이 알려준 호흡법으로 전문 킬러를 물리쳐야 한다. 


원 배틀04


폴 토마스 앤더슨(PTA)은 반전 운동 세대의 바로 다음 세대에 속한다. 그래서 이전 세대가 이루어 놓은 자유 속에서 맘껏 상상하며 미국의 역사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 미국은 늘 과거에 붙들려 왔다. 석유 자본, 종교, 가부장, 엔터테인먼트 산업—그의 인물들은 늘 무언가를 “계승”하지만, 아무것도 “갱신”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세계를 어떻게 찍을 줄 몰라 시대극만 찍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과감히 현재를 다루는 영화를 내놓았다. 

그가 참조한 원작 토마스 핀천의 <바인랜드>는 60년대 혁명 세대와 시간이 지난 80년대를 현재로 한 작품이다. 앤더슨은 20년 전부터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영화는 2000년대와 현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확히 트럼프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민자 정책에 대항하는 시민운동가 그룹과 MAGA의 극우 그룹 간의 대결은 이 시점에서 이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를 말해준다. 


원 배틀05


미국은 처음부터 혁명으로 세워진 나라다. 그래서 국가 체제 안에서 자유가 보장되며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벌어 들인 자본으로 견고한 국가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 견고한 시스템이 갖는 한계는 60년대 반전과 민권 운동이 혁명의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던 이유를 제공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프렌치 75의 주장은 공허한 이상주의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이 프렌치 68이 아닌 프렌치 75인 이유는 명확하다. 실존주의에 기반한 프랑스 68혁명 세대의 이상과 75미리 야포의 폭발력과의 차이인 것이다. 이 폭력으로는 미국을 무너뜨릴 수 없다. 미국은 자본의 틀 안에서 자유를 풀어놓고 풍요로 혁명을 억제해 온 나라이다. 모든 상징은 곧 브랜드가 되고, 모든 분노는 콘텐츠로 흡수된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가장 강력한 통치 기술이다. 미국은 혁명을 탄압하지 않는다. 대신 유통한다. 이 무자비한 자본의 폭격 앞에 다음 세대를 구할 수 있는 건 딸을 구하겠다는 아버지의 절절한 의지, 아이는 사살하지 않는다는 인디언 혼혈 킬러의 철칙과 희생 같은 것이다.  


원 배틀06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남긴다. 미국에서 혁명은 정말 불가능한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그것의 새로운 형태를 알아보지 못한 것뿐인가? 원피스 깃발을 든 젠지 혁명은 네팔을 뒤집어 놓았다. 이 시위는 아시아 부패 권력을 벌벌 떨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의한 물가 상승이 미국의 젠지 세대를 분노하게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현재 미국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윤리적인 연대에 기반한 시민운동만이 다음 세대에게 기댈 수 있는 희망이다. 그래서 윌라는 3시간 30분을 운전하여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다.

폴 오스터의 <4321>에서 퍼거슨은 다양한 삶을 경험하지만 결국 작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이룬다. 이 주인공은 사실 폴 오스터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혁명가로서의 패배가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위치로의 이동이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를 응시한다. 이것은 패배의 서사가 아니라, 시대 인식의 변화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밥 퍼거슨도 비슷한 자리에 선다. 그는 더 이상 폭탄 전문가가 아니다. 세상을 날려버리겠다는 욕망 대신, 세상을 견디며 다음 세대를 넘기는 역할을 맡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중요한 것은 적의 패배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존이다. 


"세상이 우리를 바꾸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






K People Focus 모하지 칼럼니스트(mossisle@gmail.com)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희망의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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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16 12:52 수정 2025.12.1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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