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 오면 정형외과 대기실은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북적인다. 기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과 인대가 경직되어 관절 통증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한국인이라면 으레 떠올리는 것이 바로 뜨끈한 '도가니탕'이나 뽀얀 '사골국'이다. 예로부터 "뼈가 부러지거나 관절이 아플 때는 동물의 뼈를 고아 먹어야 한다"는, 이른바 '이골치골(以骨治骨, 뼈로써 뼈를 다스린다)'의 속설이 깊게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도가니의 쫀득한 식감을 느끼며 "이것이 내 무릎 연골이 되겠지"라는 위안을 삼는다. 부모님의 약해진 관절을 걱정하며 사골을 한 솥 가득 끓여내는 자식들의 정성 또한 지극하다. 하지만 의학 전문가들은 이러한 믿음에 대해 냉정한 경고를 보낸다. 우리가 관절 건강의 '특효약'이라 믿었던 도가니탕과 사골국이, 실제로는 무릎 건강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겨울철 보양식의 대명사인 도가니탕과 사골국에 감춰진 의학적 진실과 오해를 심층 취재했다.
콜라겐의 배신, 먹는 족족 무릎으로 가지 않는다
도가니탕이 관절에 좋다고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콜라겐'이다. 도가니에는 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며, 이것이 우리 몸의 연골을 구성하는 성분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도 도가니의 물렁물렁한 형태가 무릎 연골을 연상시키기에, 먹으면 곧바로 관절로 갈 것이라는 직관적인 믿음이 생긴다. 그러나 이는 소화기 생리학을 간과한 착각이다.
전문가들은 입으로 섭취한 콜라겐이 그대로 관절 연골로 이동해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가니탕 속의 콜라겐은 위와 장을 거치며 소화 효소에 의해 아주 작은 단위인 '아미노산'으로 잘게 분해된다. 이렇게 분해된 아미노산은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흩어져 피부, 근육, 혈관 등 단백질이 필요한 신체 곳곳에 쓰인다. 즉, 도가니탕을 먹었다고 해서 그 영양분이 콕 집어 무릎 관절로 배송되는 '택배 시스템'은 우리 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이를 관절염 치료제나 연골 재생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빈약하다.

사골국의 역설, 오래 끓일수록 뼈 구멍 숭숭 뚫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골국을 끓이는 방식에 있다. 많은 가정에서 사골은 진한 국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장시간 우려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뽀얗고 끈적한 국물이 나와야 비로소 '진국'이라며 보양식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영양학적 분석 결과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다.
사골 국물에는 뼈 건강에 필수적인 칼슘도 들어있지만,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는 '인(Phosphorus)'이라는 성분도 함께 존재한다. 문제는 끓이는 횟수와 시간이다. 사골을 처음 끓일 때는 칼슘과 인의 비율이 적절할 수 있으나, 재탕, 삼탕을 거치며 오래 끓일수록 인 성분이 급격히 많이 용출된다. 인은 체내에서 칼슘과 결합하여 배출되는 성질이 있어, 과도한 인 섭취는 오히려 몸속의 칼슘을 빼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인을 과다 섭취하면 체내 칼슘 흡수가 저해될 뿐만 아니라, 뼈 속에 저장된 칼슘까지 녹여 배출시킬 수 있어 골다공증 환자나 관절이 약한 노년층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관절 살리려다 뱃살만 늘어, 체중 부하의 악순환
관절염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리 수칙 중 하나는 '체중 조절'이다. 무릎은 우리 몸의 하중을 지탱하는 부위로, 체중이 1kg 늘어날 때마다 무릎이 받는 하중은 3~5kg까지 증가한다. 그런데 도가니탕과 사골국은 대표적인 고열량, 고지방 음식이다.
진한 국물 맛을 내는 주성분은 지방이며, 여기에 밥을 말아 먹고 깍두기 등 염분이 높은 반찬을 곁들이는 한국식 식습관은 칼로리 과잉 섭취로 이어지기 쉽다.
입맛이 없는 환자에게 기력 회복용으로는 좋을 수 있으나, 활동량이 줄어든 관절염 환자가 보양식을 자주 섭취하다 보면 체중이 증가하게 된다. 늘어난 체중은 고스란히 무릎 관절의 부담으로 작용하여 통증을 악화시키고 연골 마모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무릎 낫게 하려고 먹었는데 살이 쪄서 무릎이 더 아프다"는 환자들의 호소는 바로 이러한 고열량 보양식의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다.
도가니탕과 사골국은 추운 겨울,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훌륭한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를 관절염의 치료제나 연골 재생의 만병통치약으로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엇을 먹어서' 관절을 고치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을 줄이고 어떻게 움직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무릎 건강에는 훨씬 더 유익하다.
관절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가니탕에 의존하기보다, 칼슘 흡수율이 높은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과 비타민D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 표고버섯 등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하여 관절로 가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허벅지 근력 운동과 적절한 체중 유지가 '진짜' 보양이다.
맛있는 한 끼 식사로서의 도가니탕은 즐기되, 뼈를 위한답시고 하루 세끼 사골국만 고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현명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만이 100세 시대, 당신의 무릎을 지켜줄 유일한 정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