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국내 소비 시장이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주요 도심의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은 연말 특수를 맞아 ‘예약 전쟁’을 치를 만큼 호황을 누리는 반면, 골목상권의 식당과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줄어들며 한산한 분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
5성급 호텔의 연말 패키지는 판매 개시 직후 완판됐고, 고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한 달 전부터 예약이 마감될 정도다. 한 호텔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가장 활발한 연말 분위기”라며 “객실은 물론 식음업장까지 연일 만석 상태”라고 전했다.
반면 도심을 벗어난 골목상권의 풍경은 정반대다. 회식이 부활했지만 중저가 음식점의 매출은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신촌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12월이면 단체 손님 예약이 빼곡했는데 올해는 절반도 안 된다”며 “젊은 층 소비가 호텔 뷔페나 프랜차이즈 쪽으로 쏠리면서 골목식당들은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명동과 홍대 등 일부 유동인구 밀집 지역을 제외하면, 소규모 상권 대부분이 주말 저녁에도 빈 테이블이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소비 편차가 아니라 경기 구조의 양극화가 소비 패턴에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팬데믹 이후 소비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고소득층 중심의 보복소비가 이어지면서 중저가 외식시장에는 그 효과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상권 교수(수원대 경영학전공)는 “외국인 관광객과 상위 소비층 중심의 수요 회복이 내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중소상권과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물가와 금리 인상도 서민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소 음식점들은 매출 감소와 인건비 상승이 겹치면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업주는 “재료비가 너무 올라 메뉴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남는 게 없지만, 손님은 가격에 민감하다 보니 오히려 더 줄어든다”고 토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 추가 발행, 지역 상권 축제, 소비 진작 캠페인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단기적 효과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지역 상권의 체질 개선이 중요하다”며 “상생형 소비 프로그램이나 지역 관광 연계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연말 소비의 양극화가 장기적인 내수 불균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한다. 소비가 특정 계층과 지역에만 집중될 경우, 내수 회복의 속도가 둔화되고 중소상공인의 생존 기반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한국경영문화연구원 이택호 원장(수원대 교수)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외국인 관광객 의존형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지역별로 균형 있는 소비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호텔과 레스토랑의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도심의 풍경 뒤편에서, 여전히 불 꺼진 상가와 한산한 식당들이 늘고 있다. 연말의 들뜬 소비 열기가 모든 이들에게 기회로 이어지기 위해선, 소비의 온기가 골목 구석까지 닿을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