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위의 노래가 던진 한 줄의 질문
요즘 내가 챙겨 보는 방송 중 하나는 ‘싱어게인4’다. 화요일 저녁, 하루를 마치고 조용히 TV를 켜면 무대 위에서 각자의 인생과 시간을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붙든다.
한 달 전에는 42호 가수의 무대를 보고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TOP10을 가리는 중요한 대결의 순간까지 왔다.무대를 볼 때마다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정말, 우리나라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참 많다.” 시청자인 나는 그저 좋다, 아쉽다, 울컥한다는 감정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그런데 지난주, 한 가수의 무대가 끝난 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듣는 순간, 내 생각은 잠시 멈췄다. 내가 듣기에는 무난하고 평범하게 느껴졌던 무대였지만, 한 심사위원은 “감정 전달이 아주 섬세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심사위원은 “리듬을 가지고 노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이런 문장이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저 사람은 너무나 잘 아는구나.”
전문가는 왜 전문가로 불리는가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단지 ‘듣기 좋은 소리’로 노래를 판단하는 사람이고, 그들은 ‘소리의 결, 호흡의 흔들림, 감정의 미세한 이동’까지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같은 무대를 보고도, 같은 노래를 들으며 전혀 다른 깊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차이는 재능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을 쌓아온 깊이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십 수 년, 수십 년을 한 자리에서 버텨온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TV 화면 앞에서 조용히 배웠다.
다시 ‘배우는 사람’의 자리에서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서 있는 나. 모든 것이 낯설고, 질문 하나 던지는 일조차 조심스러운 시간들.
어떤 일은 이해가 가지 않고, 어떤 구조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날들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잘 몰라도, 이 시간을 성실하게 지나온다면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질문 앞에서 조용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잘 모르는 쪽’에 서 있지만, 시간이 쌓이면 그 자리 역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싱어게인의 무대가 내게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오래 붙들고 싶은 세계
더 나아가 마음속에 품어온 자서전 프로그램과 글쓰기, 기록의 세계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직 많은 이들에게는 낯설고, 때로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게 과연 일이 되겠어?, 돈이 되겠어?”
그러나 음악을 수십 년 붙들고 온 사람에게 ‘전문가’라는 이름이 붙듯, 기록 또한 시간을 품고 오래 붙들면 분명 누군가의 삶에 닿는 깊이가 생길 것이라 믿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 줄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참 잘 아네, 자서전과 기록의 세계를.”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다시 쓰는 이유는 충분해진다.
경험이 말해 주는 단 한 가지
이번 방송을 통해 내가 얻은 배움은 분명했다. 지금은 잘 몰라도 괜찮고, 남들보다 느려 보여도 괜찮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얼마나 오래, 얼마나 성실하게 머물러 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타고난 재능보다 ‘버텨낸 시간의 두께’에서 갈린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무엇 앞에서 ‘아직 모르는 사람’으로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머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문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 하루를 산다.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눈에는 ‘참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도록, 오늘도 내 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쌓아간다.
전문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오늘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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