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시편 141편은 다윗의 절박한 심령에서 나온 기도다. 그는 도망자였고, 억울한 음모에 휘말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복수를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간구였다. 오늘날 우리는 SNS, 정치, 일터, 인간관계 속에서 끝없이 유혹받는다. “조금쯤은 괜찮겠지” 하는 타협의 순간, 우리는 어느새 악의 냄새에 물들고 있다. 다윗의 기도는 그런 시대 속에서 믿음의 방패를 다시 세워야 함을 일깨운다.
다윗은 하나님께 “내 기도가 주 앞에 분향함과 같으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게 하소서”(시141:2)라 고백했다. 당시 제사는 향을 피워 하나님께 올리는 행위였다.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었지만, 삶 자체를 예배로 바꾸는 영적 전환을 보여준다.
오늘날 ‘향기로운 기도’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 외식이나 위선이 아닌 진심, 의식이 아닌 존재의 고백이다.
현대인의 삶 속에서 분주함과 피로는 기도의 향을 쉽게 꺼트린다. 그러나 시편 141편은 말한다. 기도는 호흡이고,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악한 세상에서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타락의 냄새에 익숙해진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시141:3)라 기도했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 오늘의 세상은 말로 사람을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인터넷 댓글, 직장 내 뒷담화, 정치적 언어의 폭력 등은 현대판 ‘입술의 전쟁터’다.
다윗의 기도는 단순히 “나쁜 말 하지 않게 해주세요”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언어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요청이다.
우리의 입술이 선동이 아닌 위로의 통로가 되기 위해선, 마음의 문이 먼저 하나님의 진리로 지켜져야 한다.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는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 악을 막는 영적 선언이다.
다윗은 자신이 악인의 식탁에 참여하지 않게 해 달라 기도했다(시141:4). 이는 물리적인 식탁이 아니라, 타협과 공모의 상징이다.
오늘날 신앙인은 눈에 보이는 악보다, 합리화된 악과 싸워야 한다. 부정한 이익, 왜곡된 진실, 비겁한 침묵이 우리 안의 악한 식탁이다.
다윗은 유혹의 중심에 놓이기보다, 그로부터 물러서는 용기 있는 결단을 구했다. 악의 환경에 젖어드는 대신, 믿음의 경계선을 다시 긋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 신앙인의 영적 자가격리다.
“악한 자의 길에 나를 두지 마소서.” 이 기도는 오늘날 타협의 문화 속에서 신앙인의 분별력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이다.
다윗은 자신을 향한 의인의 책망을 은혜로 받겠다고 고백했다. 이는 자신이 옳다는 고집보다, 하나님의 기준을 더 높이 두겠다는 신앙적 겸손이다.
비판이 넘치는 시대, 우리는 타인의 조언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다윗은 ‘책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교만은 신앙을 무너뜨리고, 수용은 영적 성숙을 만든다.
정의의 회복은 거창한 외침이 아니라, 내 안의 교만을 내려놓는 작은 순종에서 시작된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악인의 덫을 깨뜨리고, 의인의 길을 다시 세우실 것을 확신했다. 그것이 믿음의 정의감이다.
세상은 점점 더 회색으로 변하고 있다. 악과 선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 우리는 다윗처럼 “악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매일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는 단지 도덕적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하나님은 악을 멀리한 사람보다, 악을 이기기 위해 싸우는 자를 기뻐하신다.
시편 141편은 말한다. 믿음의 방패는 마음의 기도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