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고노동자·인권활동가 건강돌봄 연대 모금

해고 뒤 남겨진 건강·생활 위기, 지역 연대로 ‘돌봄 안전망’ 구축

3년간 424명 정밀검진·치과·심리지원… 공공기금 종료 후 시민 모금 나서

2013년 출범 후 152회 생계비, 6억 3810만 원 집행한 ‘만원의연대’ 기록

▲부산·경남 해고노동자와 인권활동가를 위한 건강돌봄 연대 사업 포스터. 사진=부산인권플랫폼파랑 제공

부산·경남 지역 해고노동자와 인권·공익활동가의 건강을 돌보는 ‘지역 건강돌봄 연대’ 사업이 공공기금 약정 종료를 앞두고 시민 참여형 모금에 나섰다. 3년 동안 424명에게 건강검진, 치과치료, 심리상담을 제공해 온 이 사업은 “아프지 않고, 오래, 함께 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며 2026년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지원을 위한 참여를 호소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해고노동자와 인권·공익활동가를 대상으로 진행돼 온 건강돌봄지원사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장기 투쟁과 실직으로 건강관리가 어려워진 이들에게 정밀검진과 치과치료, 심리상담을 제공해 온 이 사업이 2025년 말 공공기금 약정 종료를 앞두고, 시민 모금으로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이 사업의 중심에는 부산지역사회연대기금 ‘만원의연대’가 있다. 만원의연대는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이어진 파업과 그 후폭풍 속에서 해고노동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현실을 목격한 지역 노동·시민사회가 “죽지 않고 살아서 함께 싸우기 위한 연대”를 만들자는 문제의식으로 2013년 출범했다.

 

만원의연대는 출범 이후 부산 지역 해고노동자와 장기투쟁 사업장을 대상으로 생계비를 꾸준히 지원해 왔으며, 2013년부터 2025년 11월 현재까지 총 152회에 걸쳐 누적 6억 3810만 원의 생계비를 집행했다. 연도별로 해고노동자, 장기투쟁사업장, 인권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지원을 이어왔고, 2024년과 2025년에도 수천만 원 규모의 생계비가 현장으로 전달됐다.

 

별도로 지원된 의료비는 2018년 이후 의료비 항목으로만 누적 2,684만 7,930원이 지출됐으며, 암과 심혈관계 질환 등 중증 질환 조기 발견을 위한 검사 비용, 치과 치료비, 심리상담 연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여기에 포함됐다. 만원의연대 관계자는 “해고된 뒤 건강 문제를 뒤로 미루다가 병을 키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의료비 지원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생존을 지키는 최소한의 개입”이라고 말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은 부산인권플랫폼 파랑,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부산·경남지부와 함께 ‘건강돌봄지원사업’을 본격화했으며, 이 기간 동안 해고노동자와 공익·인권활동가 424명이 정밀건강검진, 치과치료, 심리검사 및 상담을 지원받았다. 사업 참여자들은 암과 심혈관질환의 조기 발견, 임플란트 등 치과치료, 우울감 완화 등 눈에 보이는 변화를 경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인권플랫폼 파랑 측은 “해고와 장기 투쟁은 당사자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며 “생계 위기와 더불어 신체 질환, 우울, 불안이 겹쳐지는 경우가 많아 통합적인 건강돌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업은 해고노동자와 인권활동가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몸으로 확인하게 하는 과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만원의연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해고가 남기는 상처의 현실이 자리한다. 한 지역 노동계 인사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공장에서 쫓겨난 뒤 길바닥에서 잠을 자던 아버지 옆에서 박스를 이불 삼아 자던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방이 아닌 현관에 박스를 펴고 눕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아빠도 이렇게 자는데’라고 말하며 현관에 눕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해고는 임금 문제를 넘어 가족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전했다.

 

해고자와 비해고자의 자녀들이 같은 아파트와 학교에서 서로를 향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던 장면, 사원아파트 퇴거 명령서를 받은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밤새 불안 속에 지내야 했던 경험도 지역 사회에 깊이 남아 있다. 만원의연대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해고는 생계만이 아니라 가족의 영혼까지 파괴한다”고 진단하며,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밥은 먹었냐’고 묻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버텨낼 힘이 생긴다”는 취지로 연대를 호소했다.

 

이번 건강돌봄지원사업은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권리를 지키는 이들의 건강을 지역이 함께 책임지자”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만원의연대는 “노동권과 인권을 지키는 싸움은 결국 모두의 삶을 지키는 일인데, 정작 그 싸움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이 건강을 잃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고노동자와 인권활동가가 병원비와 생활비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사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공공상생연대기금으로, 이 기금의 약정이 2025년을 끝으로 종료되면서, 2026년 이후에도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재정 기반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만원의연대와 부산인권플랫폼 파랑은 “연대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꾸준한 재원이 필요하다”며 “이번 시민 모금은 ‘멈추지 않는 건강돌봄’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 중인 모금 캠페인은 12월 8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목표액은 1,500만 원이다. 기부자는 부산은행 (사)부산인권플랫폼 파랑 명의 계좌를 통해 참여할 수 있고, 기부금 영수증 발급도 가능하다. 또한 만원의연대 명의 계좌와 CMS 신청을 통해 매월 정기 후원에도 참여할 수도 있다.

 

운영 구조는 공개성과 투명성을 고려해 구성됐다. 제안자 그룹에는 지역 출판사 대표, 변호사, 교수, 노동조합 간부, 시민단체 활동가, 종교계 인사 등 다양한 분야 인사가 이름을 올렸고, 운영위원회는 해고 노동자 복직 경험이 있는 인사, 민주노총 지역본부 관계자, 인권·의료·법률 분야 활동가 등이 참여해 지원 대상 선정과 집행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실무 운영은 오랜 기간 비정규직·해고 노동자 지원 활동을 해 온 활동가가 맡고 있다.

 

만원의연대 측은 이번 캠페인을 두고 “지역 사회가 스스로 만든 ‘사람을 지키는 사회안전망’을 시민 손으로 지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고노동자와 인권활동가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이웃을 지키는 일과 같다”며 “작은 정기 후원 한 건, 일시 후원 한 번이 누군가에게는 병을 키우지 않고 막아 내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프지 않고, 오래,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참여를 요청했다. 만원의연대는 “해고와 인권침해에 맞선 싸움이 개인의 희생으로만 남지 않도록, 지역이 건강돌봄 연대로 응답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모금이 목표액을 채우고 나면 2026년에도 해고노동자와 인권활동가를 위한 검진, 치과치료, 심리상담 지원 사업을 멈추지 않고 이어 갈 계획이다.

 

 

 

작성 2025.12.09 23:05 수정 2025.12.0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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