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삶에 고인 언어들 3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삶에 고인 언어들 3'


 

1. 근황

 

 

직장을

내려놓은 뒤

가끔 강의하고

흙 만지며

() 쓰고

남는 숨결로

봉사활동합니다.

 

늦게야 손에 쥔

집자묵장필휴

여덟 권입니다.

 

시는

철학도 아니고

교육도 아닌

나를 공부하는

자아 발견입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시는

내 이름표가 아니라

내 마음을 밝히는

작은 미소입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자묵장필휴에 담긴

그 심오함을

즐겁게 여행합니다.

 

* 집자묵장필휴(集字墨場必携) : 목간과 죽간 글씨부터 중국 최고의 글씨만을 뽑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집자(集字)의 놀라운 세계(고시·주역·시경에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대 명가·명구·시가와 교훈을 망라해 읽는 감동을 얻을 수 있음.)를 볼 수 있다.

 

 

 

2. 겨울나무 5

 

 

눈이 내려

겨울나무 휘어지면

새들은

가지에서 노래한다.

 

이따금 바람 불면

후르르 떨어지는

솜사탕 같은 눈이

내 발자국을 덮는다.

 

그렇지

겨울나무는 아무런

의미도 모르면서

새들의 노래 엿듣다가

반짝이는

눈 부신 햇살에 아래

지나가는 길손을 잊었다.

 

 

 

3. 겨울나무 6

 

 

나무가 되고 싶다

땅속 깊이 뿌리 내려

흙내음 묻어오는

따뜻한 자리에서

나무가 되고 싶다.

 

지나는 바람 붙잡아

함께 이야기하며

햇살도 품어 주는

나무가 되면 좋겠다.

 

새들도 쉬어 가는

쉼터가 되어

세상에 꼿꼿이 서는

나무로 남아

오래도록 서 있고 싶다

 

 

 

4. 겨울 1

 

 

겨울을 바라보니

한 줄기 햇살에 반짝이는

황홀한 꿈이었다.

 

겨울을 주워보니

손마디 드는 바람처럼

초라한 손이었다.

 

겨울을 생각하니

끝없는 방황은

덧없는 길이었다.

 

,

겨울은

나의 오래된 이력서.

 

벌레 먹은 상처들이

겨울 안에 드러나면

삶의 따뜻한 손길이

조용히 나를 다스린다.

 

 

 

5. 겨울 2

 

 

겨울바람은

나뭇가지에 휙 걸려

햇살 따라 흔들리고

시방(十方)에 대롱거린다.

 

겨울 햇빛은 이미

물 위에 반짝거리며

시간을 끌어오는

노래로 울려 퍼진다.

 

겨울 한기는

삭풍에 목청 돋우며

황소바람처럼

옆구리에 파고든다.

 

겨울 중심에는

반 클러치 밟아도

어느새 결빙이

복병으로 눈을 뜬다.

 

 

 

6. 겨울비

 

 

겨울비가

시험에 떨어진

나를 적시고 있는데

커피잔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어린다.

 

어머니는

지금은 올 수 없는

아주 멀리 있어도

예전에 그 따뜻했던

손길이

그리움으로

짠하게 스며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7. 겨울 햇살 1

 

 

겨울 햇살 펼치면

초목은 인사하고

눈 뜬 채로 잠을 잔다.

 

겨울 햇살 비추면

강물은 침묵하고

눈 감은 채 잠을 잔다.

 

겨울 햇살 따라

발길 옮기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조금씩

계절을 닮아간다.

 

 

 

8. 겨울 햇살 2

 

 

겨울 햇살 펼치면

초목은 인사하고

눈 뜬 채로 잠을 잔다.

 

겨울 햇살 비추면

강물은 침묵하고

눈 감은 채 잠을 잔다.

 

겨울 햇살 따라

발길 옮기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조금씩

계절을 닮아간다.

 

 

 

9. 겨울 서정(敍情) 1

 

 

겨울바람 눈보라 휘날리면

바다의 해무는 섬을 감아 돌고

강 위엔 물안개가 피어올라

고요를 짙게 드리운다.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수많은 나뭇가지 떨고

영하의 물빛은

굳은 숨처럼 얼어붙는다.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으면

날씨는 성난 얼굴을 하고

하늘의 별들은

잠 못 든 채 깜박거리다가

이윽고 하나둘 쓰러진다.

 

겨울센터가 다가왔는데

언제쯤 따스한 때가

빨리 올 수 있을까.

 

 

 

10. 겨울 서정(敍情) 2

 

 

눈 내린 산하는

하얀색으로 치장했고

강가에 갈대숲은

바람 부는 대로 술렁인다.

 

날아가는 새무리

흘러가는 강물은

해마다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모습은

해마다 달라지고 있다.

 

눈 들고 자세히 보니

나무는 야무진 눈을

단단하게 굳혀

내년 봄을 기약하는데

땅속의 풀 눈들은

보이지 않아

어떤 모양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11. 결혼 축시

- 벽돌을 쌓아가듯

 

 

이 맑은 날,

경사로운 축복이 내려

창조의 섭리 안에서

두 사람의 선택이

한 송이 밝은 빛으로

피어납니다.

 

마주 선 서로를 향한

결혼의 약속은

헌신적 사랑의 믿음이고

숭고한 약속의 실천입니다.

 

존경하는 내외빈의

축복하는 마음으로

늘 처음과 같이

서로 두 손을 맞잡아

벽돌을 쌓아가듯

앞으로 모든 날을

단단하게 이어 가길

기원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두 사람의 언약이 되고

두 마음이 한마음 되어

결혼생활의 멋진 삶을

가꾸고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참된 부부상으로

결혼생활 안에서 늘

성경 말씀에 충만하길 바랍니다.

 

주님의

거룩한 말씀 따르고

숭고한 사랑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

행복하게 살게 하시며,

영원한 성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12. 오복(五福)

 

 

산하처럼

푸르게, 더 푸르게

당신의 마음이

고와지길.

 

바다처럼

넓게, 더 넓게

당신의 이상이

펼쳐지길.

 

사랑처럼

밝게 웃으며

모든 기쁨

누리기를.

 

행복처럼

곁에 머물러

늘 만사형통

이루어지길.

 

* 오복(五福) : 다섯 가지의 복. ((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

 

 

 

13. 자존심

 

 

벽돌을 쌓았다.

그리고 허물었다.

 

살아오면서

쌓고 허물기를

수 없이 반복했지만

남은 것은

마음의 상처인

제로게임으로

무공(無空)이다.

 

결국

허무만 남았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시집 한 줄기 바람(1988)29, 시전집 2, 시선집 1, 소방안전칼럼집 1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5.12.09 12:29 수정 2025.12.0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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