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팰롱 투나잇쇼에 출연한 프랜 레보비츠
핸드폰 노트북이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지미 팰롱쇼에 그런 인물이 나왔다. 핸드폰 노트북 없이 사는 프랜 레보비츠(Fran Lebowitz)라는 작가이다.
보고 나서 그녀에 대해 좀 알아보기로 했다. 핸드폰 노트북 없이 사는 게 특이했는지 많은 방송에서 이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중 한 방송에서 ‘빠르게’가 의미 없다. 자신은 천천히 글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컴퓨터 초기 모형으로 워드 프로세스라 해서 타자기보다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친구가 자랑하듯 보여주자. 본인은 굳이 필요 없고 자신은 글을 천천히 쓴다고 이야기했다.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는 중인데, 우리는 과거에 비해 많은 여유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시간을 제대로 쓰는지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다. 문명 초기 인간은 해가 지면 자야 했고, 산업혁명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긴 노동시간과 열악한 환경으로 삶을 일찍 마쳤다. 그 짧은 삶 속에서도 대부분 일하고 잠깐의 여유가 있었을 뿐이다.
영어 ‘leisure’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온 말로, ‘허락된’ 또는 ‘자유 시간’이라는 뜻이다. 짧은 자유 시간이 허락될 때 영화 보드빌 같은 대중문화가 발달했다. 대중들은 허락된 시간에 즐길거리를 찾아 여럿이 같이 즐겼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대중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할 뿐 실제로 우리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과 함께 자연을 인간에게 맞게 바꾸며 살아왔다. 인간의 동물적 측면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은 성취를 하며 살 필요도 있다.
고대 그리스가 중세보다 더 뛰어난 철학 과학 등의 학문을 발달해 온 것은 이런 인간의 본성과 환경이 잘 만난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산 것은 아니다. 많은 여유 시간을 가지고 학문을 논하고 발달시킬 수 있었던 기저에는 노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예들이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자본을 대었기에 그리스 시민들은 시간의 여유가 많았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주어진 여유 시간을, 자신을 개발하는 데 썼다. 자본주의적 성공론적 개발이 아니라, 자기의 호기심을 채우는 데 시간을 보냈다. 자기가 가진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실험을 해보고, 밤하늘을 관찰해서 기록을 남기고, 사색하며 인간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며 이 소중한 자료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일부 남아 있는 자료들이 후세 학문의 바탕이 되었다. 중세를 암흑기라 부르는 것은 눈부신 학문의 발전이 멈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랜 레보비츠가 휴대용 전화기도 노트북도 없이 사니 주변의 불만이 많다. 게다가 여동생은 노트북도 아냐고 놀리듯이 말하기까지 한다. 그 대답이 재밌는데, 너는 롤스로이스 없지만 롤스로이스를 모르냐고 역으로 묻는다.
그녀가 다양한 현대 문물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판단하고 선택해서 그 물건을 쓰지 않기로 한 것뿐이다. 당연히 어떤 물건이 있어야 한다는 정답은 누가 주는 것일까. 다수가 그런 방식으로 산다고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다수의 횡포이다.
서구 철학자들의 많은 질문 중 하나가, 네가 원하는 것이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원하게 만들어진 무언인가이냐이다. 예전에도 그러한 경향이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심리학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고 은근하게 그들이 원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강압적인 방식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거리의 광고판과 인터넷의 멋진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긴다. 당장 먹고 싶지 않다가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이 나오면 배가 고파지기도 한다.
현재 많은 선진국에서 미성년자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연락용 전화기는 괜찮은데,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폰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얼마 전 호주에서는 만 16세 미만 사회적 연결망 서비스(눈)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427393)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로 필자도 책 읽는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만지는 시간이 늘어나서 조심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검색 하나 하려고 열었다가,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아깝다. 그 시간을 모으면 전집 한 질을 읽고도 남았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진다. 어른이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결국 개인의 책임이다.
앙리 파브르처럼 남는 시간에 연구해서 ‘파브르 곤충기’ 같은 대작을 남길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의 인생에 좀 더 신경 쓰며 사는 게 필요하지 않은지 늘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