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의 문턱을 넘는 일은 늘상 팍팍하다. 세상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지 않고, 우리의 마음은 그에 맞서느라 잔뜩 웅크린 채 굳어버리곤 한다. 사는 게 참 건조하고 따갑다고 느껴질 때, 예고도 없이 세상의 소음이 툭, 끊어지는 순간이 온다. 창밖을 내다보면, 거기 기적이 내리고 있다. 첫눈이다.
여기, 그 첫눈의 오심을 두고 "가장 높은 곳이 스스로 부서져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한다"라고 고백하는 시가 있다. 이 짧은 시를 읽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의 외투가 벗겨지는 듯한 서늘하고도 뜨거운 체험을 한다.
시인에게 눈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 빗장을 풀고 작정하고 내려보낸, 거룩한 자기 파괴의 결과물이다. 저 높은 곳의 절대자가 스스로 형체를 깨뜨려 가장 비천하고 더러운 땅바닥으로 내려앉는 과정. 이것을 우리는 '성육신(Incarnation)'이라 부르고, 더 쉬운 말로는 '은총'이라 부른다.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자. 곳곳에 '가시 돋친 붉은 옹이'가 박혀 있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흉측한 상처, 스스로 용서 못 한 부끄러운 잘못, 덕지덕지 붙은 욕망의 생채기들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감추려 애쓰지만, 삶은 자꾸만 이 옹이들을 건드려 덧나게 한다.
그런데 이 시는 말한다. 그 흉측한 붉은 것들 위로 "무구한 흰 옷자락이 말없이 덮인다"라고. 이 대목에서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압도적인 '하얀 눈의 포용'이다. 자격을 따지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는 무조건적인 '덮음'이다. 세상의 어떤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던 나의 붉은 죄와 허물이, 저 차갑고 순결한 흰 눈송이들 아래 속수무책으로 가려지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내 죄가 덮이는 듯한 신의 은총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하게 된다. 내가 깨끗해져서가 아니다. 덮는 존재가 너무나 희고 넓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 거대한 은총의 습격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발버둥 치는 것? 변명하는 것? 아니다. 시인은 "낡은 기도를 지우고 빈손 하나 가만히 펴는 밤"을 맞이한다. 그렇다. 무언가 달라고, 해결해 달라고 떼쓰던 낡은 기도문은 이제 부질없다. 그저 빈손을 펴고,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 압도적인 덮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항복하는 수밖에.
나는 눈 내리는 밤의 그 깊은 적막을 사랑한다. 그것은 눈이 소리를 흡수해서 생기는 물리적 현상 이상의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하늘이 땅의 이마에 닿는 시간"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침묵이다. 수많은 말들로도 채워지지 않던 영혼의 허기가, 하늘이 땅의 차가운 이마에 입 맞추는 그 고요한 순간에 비로소 채워진다.
그 침묵만이, 이 소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가장 완전한 응답이다.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큰 대답이라 소리가 없는 것이다. 올겨울, 당신이 남몰래 감추어둔 붉은 옹이 위에도 이 하얀 포용이 내리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