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 계획이 미국과의 협력하에 발전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계획이 제네바 문서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후에 개선되었다고 확인했다. 젤렌스키는 미국에서 핵심 회담을 마친 우크라이나 대표단(국가안보국방위원회 비서인 루스템 우메로프가 이끄는)을 만난 후, 대표단이 우크라이나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미국 측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업을 진전시키기 위해 미국 측과의 긴밀한 협력을 지속할 것을 지시했다. 나아가, 그는 러시아가 미국 관계자들과의 협상에 대비하여 새로운 허위 정보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겨울의 초입, 우크라이나의 대지는 여전히 차갑고 단단하다. 그 얼어붙은 땅 위로 3년 가까이 쏟아진 포탄의 잔해들은 인류의 양심을 찌르는 가시처럼 박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그 암흑 속에서 우리는 습관처럼 절망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어둠은 새벽이 오기 직전이라고 했던가. 저 멀리 대서양 건너, 그리고 알프스산맥 아래 제네바의 묵은 서류 더미 속에서 미약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주파수가 감지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쏘아 올린 ‘새로운 평화 계획’이라는 신호탄이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벼랑 끝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동시에 냉철한 이성이 빚어낸 전략적 승부수다.
고독한 외침에서 거대한 합창으로: 미국과의 ‘공동 기획’이 갖는 무게
전쟁은 총칼로 시작되지만, 결국 말(言)로 끝난다. 하지만, 그 말의 무게는 누가 뱉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평화 호소는 거친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선지자의 비명과 같았다. 절박했지만, 세계의 질서를 움직이기엔 힘에 부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명확히 했다. “미국과 함께 만들고 있다.”
이 문장이 갖는 함의는 실로 거대하다. 이것은 단순히 “무기를 더 달라”는 요청이 아니다. “전쟁의 출구를 함께 설계하자”라는 제안이며, 미국이 그 설계도에 서명했다는 뜻이다. 평화 계획이 미국의 책상 위에서, 백악관의 참모들과 우크라이나의 루스템 우메로프 국가안보국방위원회 비서가 머리를 맞대고 다듬어졌다는 사실은, 이 계획에 ‘워싱턴의 보증수표’가 찍혔음을 의미한다.
이제 평화안은 우크라이나만의 소망 목록이 아니다. 세계 최강 대국의 외교적 자산과 전략적 의지가 투영된, 현실적이고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되었다. 러시아가 단순히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거대한 바위가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이다. 고독했던 우크라이나의 독주가, 이제는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하는 이중주로 변모했다. 이 변화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반전이다.
‘제네바 문서’라는 오래된 나침반: 왜 과거를 호출하는가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젤렌스키가 언급한 ‘제네바 문서’다. 그는 이것이 새로운 평화 계획의 뿌리라고 말했다. 왜 하필 제네바인가? 그리고 그 문서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하지만 ‘제네바’라는 지명이 환기하는 역사적 상징성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제네바는 인류가 전쟁이라는 야만 속에서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자고 약속했던 도시다. 그곳에서 탄생한 수많은 협약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류의 마지막 보루였다. 젤렌스키가 ‘제네바 문서’를 호출한 것은, 이 평화 계획이 뜬구름 잡는 이상론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합의해 온 보편적 규범과 법적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과거 러시아와 서방, 혹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오갔던 미완의 합의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그러나 잊혔던 약속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고 있다는 점이다. “약속하지 않았는가, 서명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이 방식은 명분을 선점하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강력한 외교술이다. 과거의 유산인 제네바 문서는 이제 미래의 평화를 여는 열쇠가 되어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이것은 역사가 주는 지혜이자, 혼란스러운 현재를 돌파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영리한 현실 인식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 진실을 덮으려는 그림자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이다. 평화의 싹이 트려는 찰나, 젤렌스키는 서늘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러시아가 새로운 ‘허위 정보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만 기억하지만, 사실 더 치열한 전쟁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알고 있다. 미국의 조력을 받은 이 평화 계획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를. 그렇기에 그들은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기도 전에, 그 테이블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한다.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전쟁을 길게 끌려 한다”, “이 계획은 속임수다”와 같은 거짓의 독버섯을 전 세계 여론의 밭에 뿌리고 있다.
이것은 심리전이자 인지전이다. 팩트와 거짓을 교묘히 섞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이다. 젤렌스키의 경고는 우리에게 냉철한 분별력을 요구한다.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누가 평화를 원하고 누가 평화를 방해하려는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호소다. 평화는 외교관들의 서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지켜보는 세계 시민들이 거짓에 속지 않고 진실을 지지해 줄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루스템 우메로프, 그리고 밀사의 고뇌
이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루스템 우메로프가 있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날아간 그의 어깨를 상상해 본다. 조국의 운명을 가방에 넣고, 대서양을 건너는 심정은 어땠을까. 화려한 워싱턴의 회의실에서 그는 우크라이나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것은 영토의 문제였을까, 주권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잠들 권리에 관한 이야기였을까.
그는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었다. 전장의 참혹함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의 심장에 이식해야 하는 설득자였다. 그가 미국 측에 전달한 것은 서류 뭉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의 피 묻은 호소였으리라.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를 만나고 나서 “미국과의 협력을 지속하라”고 지시한 것은, 그 만남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뉴스 단신으로 지나치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조국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의 깊은 고뇌와 땀방울이 서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