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 제2의 뇌다.” 최근 의학계와 영양학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문장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인체에는 약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장에 분포해 있으며, 장과 뇌는 ‘뇌-장 축(Gut-Brain Axis)’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신경망은 감정, 식욕, 수면, 면역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픈 이유, 혹은 불안할 때 식욕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인의 식습관은 정제된 탄수화물, 인스턴트 식품, 과도한 지방으로 인해 장내 미생물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반면, 김치·청국장·요거트와 같은 전통 발효식품은 장내 유익균을 늘리고 해로운 균을 억제하여 ‘몸속 혁명’을 일으킨다.

장내 미생물의 힘: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신경망
인체의 장내에는 약 10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음식물을 분해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미생물들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을 합성해 뇌로 신호를 보낸다. 실제로 인체 세로토닌의 90% 이상이 장에서 만들어진다.
최근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즉, 장 건강이 단순히 소화 문제를 넘어 정신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장내 유익균이 많은 사람은 감정 조절 능력이 높고, 스트레스에 덜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효식품의 대표주자 김치와 청국장, 그리고 요거트의 역할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인 김치와 청국장은 장 건강의 대표주자다. 김치는 젖산균의 보고로, 장내 환경을 산성으로 유지해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한다. 또한 김치 속 유산균은 면역세포를 자극해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
청국장은 ‘바실루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강력한 유익균을 함유하고 있어 장내 독소를 분해하고 단백질 흡수를 돕는다. 요거트 역시 대표적인 서양식 발효식품으로,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세 가지 발효식품은 각각 다른 균종을 통해 장 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하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
균형 잡힌 장내 환경이 만드는 면역력과 행복감
면역력의 70%는 장에서 시작된다. 장내 미생물이 면역세포의 활동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장내 환경이 좋으면 염증이 줄고, 감염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다. 반대로 장내 유해균이 늘어나면 피로감, 변비, 알레르기, 피부 트러블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장 건강은 행복감과도 직결된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뇌뿐 아니라 장에서도 분비되며, 장내 환경이 안정적일수록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장내 유익균을 늘리는 식단을 4주간 유지한 실험 참가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수치가 현저히 감소했다.
일상 속 장 건강 습관: 현대인을 위한 발효식 실천법
장 건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꾸준한 식습관이 핵심이다. 김치는 하루 한 접시, 요거트는 하루 한 컵 정도를 섭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청국장은 고단백 식품이므로 주 2~3회 반찬으로 곁들이면 좋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해조류, 통곡물을 함께 섭취하면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유익균 증식을 돕는다. 가공식품, 설탕, 인공첨가물은 유해균의 먹이가 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는 것도 장 건강의 필수 요소다.
“장이 건강해야 뇌가 건강하다.”
발효식품은 단순히 전통음식이 아니라 현대인의 건강한 삶을 위한 과학적인 선택이다. 김치, 청국장, 요거트 같은 발효식품을 일상 식탁에 꾸준히 올리는 것만으로도 면역력, 집중력, 기분의 균형을 지킬 수 있다.
앞으로 식품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프로바이오틱스’와 ‘발효식’이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인 장을 지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