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온라인”인 시대다.
메신저의 초록 불은 꺼질 줄을 모르고 누군가의 시선과 호출은 24시간 내내 이어진다.
회사에서는 “언제든 연락 가능한 사람”이 이상적인 인재처럼 여겨지고 관계에서도 “항상 반응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소비된다.
그런데 이상한 역설이 있다.
늘 곁에 있는 사람일수록 종종 그 가치가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
언제든 호출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젠가부터 ‘굳이 소중히 다루지 않아도 되는’ 대상으로 슬그머니 내려앉는다.
여기서 묻고 싶다.
“잠시 사라져본 적 있는가?”
억지로 토라져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 본 적이 있는가?

게으름이 아니라 억지로 꾸미거나 밀어붙이지 않는 상태라고 노자는 말한다.(ⓒ온쉼표저널)
‘없는 것’이 드러내는 것들 - 노자가 말한 빈자리의 힘
노자는 『도덕경』에서 “무(無)”의 힘을 자주 이야기한다.
집을 짓는 데 나무와 흙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머무는 것은 그 안의 ‘빈 공간’이라는 말
항아리를 만들 때 흙으로 둘레를 빚지만 실제로 쓰임을 가지게 하는 것은 내부의 빈 자리라는 역설
눈에 보이는 것(有)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無)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가치를 만든다는 통찰이다.
이 관점으로 우리 삶을 다시 보면 부재는 결핍이 아니라 가치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늘 앉아 있던 자리에 어느 날 사람이 없다.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이 조용히 감당하던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늘 먼저 안부를 묻던 사람이 어느 날 침묵한다.
그제야 그 사람이 관계를 얼마나 부드럽게 이어오고 있었는지 느끼게 된다.
부재는 결핍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의미를 형광펜처럼 강조해주는 순간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고
스스로 그러도록(自然) 두어라.
때로는 물러섬이 네가 누구인지를 더 잘 드러낸다.”
항상 ‘있으려는’ 사람들 점점 희미해지는 존재감
성과와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저마다 이런 믿음을 품고 산다.
“항상 반응해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쉬면 뒤처진다.”
“자리를 비우면 대체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길게 머물고 더 자주 얼굴을 비춘다.
업무도 관계도 SNS도 끊임없이 접속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1. 우리 자신에게서도 ‘나’의 가치가 흐려진다.
늘 투입되어 있으니 스스로도 “나는 당연히 이만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쌓이는 건 성취보다 피로 그리고 ‘나 말고도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기 평가절하다.
2. 타인에게서도 희소성이 사라진다.
언제든 연락하면 응답하는 사람
“고마워”보다는 “역시 그렇지 뭐”라는 반응을 더 자주 듣게 된다.
늘 곁에 있어서 오히려 소중함이 잘 보이지 않는 역효과
3. 관계와 일에 ‘공기 같은 존재’가 된다.
중요하지만 없어지기 전까지는 잘 느끼지 못하는 상태
공기처럼 귀하지만 공기처럼 당연하게 소비되는 삶
노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과도한 유(有)’의 상태다.
너무 많이 드러나기에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
무위자연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음”
많은 사람이 ‘무위(無爲)’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노자가 말한 무위는 게으름이 아니라 억지로 꾸미거나 밀어붙이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나를 과장해서 보이려 애쓰지 않는 것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쥐어짜지 않는 것
일이 나를 삼키도록 스스로를 내버려두지 않는 것
무위자연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해서 하는 일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을 믿어라.”
여기서 '일시적 부재’는 무위자연의 실천 방식이 된다.
일부러 드라마를 만들지 않고
억지 기회를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나를 소모시키는 자리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것
“나 없으면 안 돌아갈 거야”라는 집착 대신
“나 없이도 돌아가는 세계에서 나는 어떤 리듬으로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태도
이것이 무위자연이 권하는 조용한 자존감이다.
사라져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들
잠시 사라져보면 두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1.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내가 빠져도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영역이 보인다.
그곳에서 억지로 붙잡고 있던 역할과 책임 일부를 놓을 수 있다.
“이건 굳이 내가 다 짊어질 필요가 없구나”를 배우게 된다.
2. 정말로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들
내가 비었을 때 유난히 티가 나는 부분이 있다.
그 자리가 바로 나의 고유한 기여가 드러나는 곳이다.
“아 여기는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이 편안해지는구나”를 알게 된다.
일시적 부재는 이렇게 ‘나의 진짜 역할’을 선별해주는 필터가 된다.
계속 남아 있는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가 커지는 것이 아니다.
잠시 자리를 비워볼 때 나라는 존재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시적 부재’ 3가지 레시피
거창한 은둔이나 사직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삶의 자리에서 바로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무위의 실천들이다.
1. 디지털 그림자 시간 만들기
하루 1시간, 의도적으로 ‘연결을 끊는 시간’을 정한다.
알림을 전부 꺼두고
메시지에 즉시 답하지 않으며
SNS, 뉴스, 메신저를 열지 않는 한 시간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다.
남에게 보이는 ‘나’가 아니라 나에게만 유효한 나에게 접속하는 연습이 된다.
2. 관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기
항상 먼저 연락하던 사이, 늘 챙기는 역할을 맡아온 관계가 있다면
다음 한 번만이라도 먼저 연락하지 않고 기다려본다.
그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일방적 돌봄의 균형을 점검해보는 시간이다.
이 ‘침묵의 간격’ 속에서
정말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과,
내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던 관계가 자연스럽게 갈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3. 아무것도 안 하는 하루를 ‘의도적으로’ 정하기
주 1회, 짧게는 반나절이라도 좋다.
계획 없이 보내는 시간을 일정에 꽂아 넣는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냥 걷고 멍하니 있고 느리게 밥을 해 먹는 시간
노자가 말한 “자연스러움(自然)”은 거창한 휴양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쫓아다니지 않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잠시 사라질 용기 다시 나타날 때의 품격
일시적 부재의 미학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항상 존재를 증명하려 드는가?”
“잠시 사라져도 괜찮은 사람일 수는 없는가?”
노자의 무위자연은 우리에게
“조금 덜 애쓰라”는 게 아니라
“쓸데없이 애쓰는 자리에서 빠져나오라”고 말한다.
잠시 사라질 용기를 낸 사람만이
다시 나타났을 때 더 단단한 중심과 분명한 역할을 갖게 된다.
남겨야 할 자리는 남기고 떠나도 되는 자리는 떠나보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그래서 이제야 나는 나답게 설 수 있다.”
그게 바로
일시적 부재의 미학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조용한 해방이자 나의 진짜 가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