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경계를 넘어
- 하이리아가 던지는 미래도시의 질문
1950년대 한국전쟁의 포화 속, 부산은 국가의 마지막 방어선이자 새로운 수도였다.
그 시절 부산 북구와 연제구 일대에는 미군 보급기지인 ‘하이리아 캠프(Hialeah Camp)’가 들어섰다.
이곳은 단순한 군사기지가 아니라, 패전과 피난의 도시가 다국적 질서와 경계의 문화를 경험한 현장이었다.
당시의 철조망은 군사적 경계를 의미했지만, 동시에 낯선 문화와 경제의 흐름이 들어오는 근대화의 통로이기도 했다.
전시는 이러한 ‘경계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한다.
포스터 속 격자형 철조망은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넘어 미래로 연결되는 창으로 표현되었다.
관람객은 그 너머에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은 한때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당시 하이리아 기지는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수많은 피난민의 삶이 얽힌 복합공간이었다.
기지 내에는 ‘The Holiday’라 불린 PX가 있었고,
한쪽에서는 미군 트럭이 오가며, 다른 쪽에서는 전쟁고아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이러한 풍경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전후 도시가 어떻게 기억과 발전의 양면성 속에서 재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부산시민공원은 오늘날 그 자리에 들어서며,
‘군사도시의 상흔’을 시민의 공간으로 전환한 기억의 복원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는 그 변화의 과정을 시각 자료와 인터뷰, 그리고 예술적 해석으로 재조명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에 있다.
하이리아의 기억은 단순히 옛 건물이나 군사 유산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는 관람객이 ‘기억의 주체’로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공간을 마련하여,
개인의 경험과 도시의 역사, 그리고 사회적 기억이 교차하는 새로운 도시적 서사를 만든다.
이곳에서 ‘경계’는 더 이상 단절의 의미가 아니다.
하이리아의 담장은 시민 참여형 기억의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디지털 아카이브와 증강현실(AR)을 통해
관람객은 과거의 장면을 현재의 공간 위에 직접 재구성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래형 도시문화의 핵심 — 기억의 재생과 경험의 확장이다.
“기억은 미래를 위한 가장 오래된 기술이다.”
하이리아 전시는 도시의 기억이 단순한 과거 보존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도시공존의 설계 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땅이 이제는 시민의 산책길이 되고,
군용 건물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뀐 그 현장 속에서
우리는 ‘기억 기반 도시 회복력(Memory-Based Resilience)’의 개념을 체험한다.
부산의 하이리아는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성장하는,
21세기형 회복도시의 미래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경계와 기억의 땅”이라는 전시의 주제는 결국,
경계를 허물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존의 도시’ 부산을 예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