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스 상을 받고 감동하는 아룬다티 로이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을 읽고 친영주의자와 불가촉천민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남았다. 영어로 친영주의자는 ‘Anglophile’이라고 한다. ‘Anglo-’는 영국을 가리키는 앵글로 색슨족에서 온 말이고, ‘-phile’는 사랑하다는 의미를 가진 접사이다. 그래서 지혜를 사랑하는 ‘philosophy’가 철학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남미를 여행하고 이 책을 읽으며 필자가 생각한 게 하나 있다. 식민지를 겪은 후 빈부격차가 심하고 가난한 나라들은 대개 식민지 시절에 잘 살던 이들이 지배하던 나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도 현재 유명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식민지 시절 괜찮았던 집안 후손이 많고, 인도는 잘 몰랐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 그런 것 같다.
소설 속 대표적 친영주의자는 암무의 아버지이자, 쌍둥이의 외할아버지인 파파치라는 인물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잘 나가던 곤충학자이고 해방 후에도 이름만 바뀐 인도 곤충학회에서 회장까지 한 인물이다. 인도도 영국 식민지 해방 후 부역자들을 처벌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은 나치 지배 후 회복된 정권에서 부역자들을 철저히 청산했다. 프랑스는 특히 언론인 부역자를 먼저 청산했다고 한다. 나치에 부역한 언론사는 폐간했고, 일부 언론인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무력으로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지배할 수 있지만, 글을 통한 세뇌와 동조는 그 여파가 강하고 오래간다. 그래서 일제가 처음에는 무단 통치를 했지만, 후에는 문화 통치로 바꾸었을 것이다. 많은 문학인 예술인을 포섭해서 일제에 부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마지막 태평양 전쟁 때는 이들을 활용하여, 더욱 수탈하고 많은 한민족 민초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해방 후 이런 무리를 청산하는 게 중요한 것이 이들은 기회주의자이고 자기 영달을 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면과 선한 면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생존을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만, 사회적 동물로 살기 위해서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가 이기적으로 구는 무리가 남을 해치는 행동을 해도 처벌받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이게 식민지를 겪은 나라 중 부역자들을 처벌하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고 말한 것은, 누군가 한 명이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게 선례가 되고 사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악법이 있으면 그것을 고쳐서 좋을 법을 만드는 게 소크라테스 같은 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의견을 내서 악법을 고치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기를 원했다.
부역자들은 기회주의자이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공 영역이나 주요 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고위공무원이 된 이가 그렇게 자기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사회는 잘못된 것일 것이다.
남미나 인도 등 부패 문제가 잊을만하면 언론에 한 번 씩 나오는 것은 그런 이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라보다 개인의 영달이 중요한 사람은 사적 영역에서 사업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친영주의자 후손이 지배하는 인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케랄라 지방의 대표 전통 무용극인 ‘카타칼리’의 쇠락이다. 원래는 저녁 늦게 시작해서 새벽까지 하는 공연이다. 하지만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카타칼리는 관객의 입맛에 맞게 난도질해서 짧게 줄여 버렸다.
기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친영주의자들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카타칼리보다 더 좋다고 여길 것이다. 한국의 사대주의자들이 우리말을 사랑하지 않아서 ‘음악의 소리’ 라던지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는 영화 제목을 그냥 영어 음차 그대로 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방 후 기회주의자들이 주요 요직에 있는 한국도 많은 전통문화가 사라졌다. 조상의 지혜였던 초가지붕은 발암 물질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 이도 있다. 그래도 한국은 희망이 있다. 한국을 사랑하는 이들이 요직에 들어가며 국악 중고등학교도 만들고, 다시 전통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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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인도나 다른 남미와 한국의 차이라고 본다. 외환위기 후 금을 선뜻 내놓은 민초들이 한국에는 많다. 그래도 한국에는 한민족의 정신을 이어받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요직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이들이 조금 더 다수가 된다면, 많은 우리 문화가 복원되고 우리말 파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