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교수는 전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을 지낸 법학박사로, 노인일자리 분야 전반을 소관 영역으로 하여 관련 조례 제‧개정, 예산·결산 심사, 행정사무감사 등을 담당해 온 전문가이다. 이 칼럼은 이러한 의회 실무 경험과 현장의 고민을 바탕으로, 초고령사회 노인일자리 정책의 방향을 점검하고자 작성되었다.
2026년 대한민국의 노인일자리 정책은 분명 ‘양적 확대’라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는 일자리는 115만 개를 넘어섰고, 형태 역시 단순 공익형에서 사회서비스형·시장형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하였다. 특히 하루 3~4시간 일하고도 실내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며 월 100만 원 안팎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우리 사회 노인복지 정책의 진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단시간·경량 노동+실질 소득’ 구조가 점차 제도 속에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과거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며, 노인일자리 분야 전반을 소관으로 하여 관련 조례, 예산, 결산, 행정사무감사에 직접 참여해 왔다. 현장에서 느낀 가장 큰 문제의식은, 숫자와 사업 수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비해, 정작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보여주는 ‘질적 지표’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참여자들은 “심심해서 나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가·사회참여’보다 ‘실질 소득’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비, 의료비, 주거비, 자녀·손주 지원 등 현실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노인일자리 정책은 단순히 “몇 명을 참여시켰는가”라는 계량지표를 넘어, “어떤 일자리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적 성과, 그리고 세대·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사회통합 효과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첫째, 맞춤형 일자리와 경력 활용 정책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많은 노인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공익형 업무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공무원, 교사, 간호사, 기술직, 자영업 등으로 살아온 이들은 자신의 경력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의 정책은 여전히 공원 관리, 교통 안내, 환경정비 등 ‘보조적 역할’에 치우쳐 있는 측면이 크다. 의회 심사 과정에서도 “이 정도 사업이면 예산만 늘린다고 해서 질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노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의 파트너’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공공기관·기업이 퇴직자 경력을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지자체와 연계하는 ‘경력 기반 맞춤형 시니어 일자리’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단순 사업 공모 수준을 넘어, 일정 교육과 심사를 거친 후 ‘전문 시니어 인력’으로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학교 멘토링, 행정 보조, 상담·코칭, 마을계획 컨설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노인의 경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조례 차원에서 근거 규정을 두고, 예산·결산 심사를 통해 사업 구조를 계속 점검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둘째, 단시간 고수입 구조의 정책적 내실을 다져야 한다. ‘하루 3시간, 월 100만 원’과 같은 모델은 분명 고무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서울·수도권 일부 지자체에 편중되거나, 정보 접근성이 높은 분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가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의회 현장에서 살펴보면, 인터넷 공고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 사이, 그리고 재정력이 풍부한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농촌·도서 지역, 저소득층, 1인 가구 등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선제적 발굴 시스템’이 필요하다. 면사무소·주민센터, 통·반장, 복지관, 방문간호·돌봄 인력 등과 연계하여 직접 찾아가는 안내와 상담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동일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지자체나 사업 유형에 따라 수당·보조금이 다르게 지급되는 사례를 최소화하여, ‘동일노동·동일수당’ 원칙에 가까운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안 심사와 결산검사 단계에서 이러한 불균형을 점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지방의회의 중요한 책무이다. 정책의 신뢰는 작은 불공정에서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셋째, 민간·시장형 일자리 생태계 조성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노인일자리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정부 재정지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예산이 줄어들 경우 사업 축소로 직결될 수 있는 구조이다. 초고령사회를 지속가능하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마중물을 제공하되 민간·사회적경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융합형 시니어 일자리 시장’을 키워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전환과 고령화를 결합한 새로운 직업군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 무인 키오스크 안내, 스마트폰·AI 활용 교육, 온라인 민원 도우미, 그린케어·산림치유 활동, 문화·관광해설 등은 노인들의 삶의 경험과 친밀한 대면 소통 능력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분야에 대해 정부는 단기 사업 지원을 넘어, 창업·사회적기업 육성, 고령자 고용장려금, 세액공제, 공공기관 우선구매 등 제도적 인센티브를 설계함으로써 민간 참여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복지와 산업, 고용과 지역경제를 하나의 선순환 구조로 엮는 ‘시니어 일자리 클러스터’ 구상이 요구된다. 지방의회는 관련 조례 제정과 예산 심사를 통해 이러한 생태계 조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넷째, ‘사회적 효능감’이 살아있는 일자리 혁신이 필요하다. 많은 노인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자리에 참여한다. 이런 심리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경험이 있어야 삶의 만족도와 정신건강이 함께 개선되고, 세대 간 관계도 부드러워진다.
학교 현장에서의 진로·인성 멘토링, 아동·청소년 돌봄, 취약가구 방문, 마을 안전지킴이, 독거노인·장애인 방문 말벗, 주민자치회·마을계획 수립 참여, 세대통합 프로그램 진행 등은 모두 사회적 효능감을 높이는 대표적인 일자리 모델이다. 이러한 사업이 단기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역의 돌봄·교육·안전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평가 지표 역시 단순 참여 인원과 예산 집행률이 아니라, ‘관계망 회복도’, ‘세대 간 교류 지표’, ‘지역사회 서비스 개선 정도’ 등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행정사무감사 과정에서 사업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노인일자리를 바라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시민의 인식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노인일자리는 단순한 복지정책의 한 항목이 아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고령자의 소득보전 정책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재편, 지역사회 통합, 세대 간 연대, 돌봄 체계 강화와도 직결되는 종합정책이다. 다시 말해, 노인일자리 정책은 ‘복지정책·노동정책·지역정책·교육·보건정책’을 가로지르는 교차점에 서 있다. 지방의회에서 노인일자리 관련 조례와 예산, 결산, 행정사무감사를 다룰 때, 단일 부서·단일 사업의 시각을 넘어 이러한 거버넌스 관점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서 노인일자리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존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했는가”, “얼마나 지역과 세대를 잇는 다리로 설계했는가”이다. 맞춤형 경력 활용, 공정한 접근성과 수당 체계, 민간과 연계된 융합형 시장, 사회적 효능감이 살아있는 일자리 모델로 정책의 방향을 재정렬할 때, 노인일자리는 개인의 생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 될 것이다.
그것이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나라는 지금, 노인일자리 정책 앞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이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