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부터 시작되어 2022년 양국 간의 전면전으로 번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동슬라브족 전쟁이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중재로 전쟁 중지와 평화로 이어질지에 대해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유럽, 특히 NATO의 동진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인 동구 권에 대한 영향력 상실에 군사력을 통한 위협을 했고, 이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국과 심지어 한때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국이었던 발트 3국의 NATO 가입 등 동유럽의 지속된 친 서방화를 불러오게 된다.
구 소련의 중요한 구성국이었던 우크라이나도 초기에는 친러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러시아의 영향력 안에 머물렀으나, 점차 러시아가 후원하는 친러 세력들의 정치적 무능함에 피로감과 회의감이 쌓여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진영들은 그 영향력을 잃어갔다. 끝내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정권은 우크라이나에서 붕괴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뚜렷하게 이탈하리라 여겨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러시아 내부에서는 푸틴 정권의 민족주의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결국,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의 의지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영향권에 종속시키려는 러시아의 욕망이 동시에 표면화됐다. 이는 공산주의와 냉전 체제의 수혜자였으나 소련 해체 후 쇠퇴하고 있는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었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이라는 유혈 사태로 발전했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중재를 위한 미국의 28개 조항의 평화 협상안을 놓고, 서방측에게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에, 이번 협상안에 대해 국제 지역 전문가인 아신대학교 김종일 교수와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김 교수는 많은 이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주도하는 단일한 계획을 상상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방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복잡하고 예상치 못한 역학 관계가 숨어있다고 언급하면서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번 평화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5가지 핵심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1. 유럽의 반격: 미국 안을 뛰어넘는 독자적 평화 계획
이번 협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영국, 프랑스, 독일이 단순히 미국의 제안을 따르는 것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더 유리한 독자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방 동맹 내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두고 미묘한 견해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 병력 상한선: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 병력을 60만 명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반면 유럽 3국은 '평화 시기 80만 명'이라는 훨씬 높은 상한선을 제시하여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을 더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 영토 문제: 미국 안은 '일부 지역을 사실상 러시아 소유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컸다. 유럽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접촉선에서부터 영토 통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수치 조정을 넘어선 근본적인 철학의 대립을 보여준다. 미국의 접근법이 일부 영토를 양보해서라도 신속한 합의를 끌어내려는 '전략적 실용주의'에 가깝다면, 유럽의 제안은 침략 행위를 용납하지 않고, 국제법 원칙을 지키려는 '원칙 기반의 장기적 안보'를 중시하는 것이다.
2. '배상' 대 '수익':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두 가지 운명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처리 방식을 두고 미국과 유럽의 접근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는 이번 협상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이다.
유럽 측 제안은 러시아의 전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입은 피해가 완전히 보상될 때까지'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여 완전한 재정적 배상을 목표로 한다.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재건되고 재정적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여기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끼친 손해를 보상할 때까지 계속 동결될 러시아의 주권 자산도 포함된다.
반면, 미국 측 제안은 실용적이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다. 동결 자산 중 1,000억 달러를 미국 주도의 재건 기금으로 전환하고, 그 투자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50%'를 미국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두 접근법은 단순한 방식의 차이를 넘어, 러시아의 전쟁 책임을 묻는 근본적인 철학의 대립을 보여준다. 하나는 완전한 '배상(Reparation)'을 통한 정의 구현을, 다른 하나는 '수익(Revenue)' 창출을 통한 실용적 재건을 우선시한다.
3. 유럽의 제안: 미국으로부터 'NATO급' 안보 보장을 받아내라
유럽 측 제안에는 우크라이나의 미래 안보를 위한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NATO 5조와 유사한 안보 보장'을 미국으로부터 직접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NATO의 5조는 회원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체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 방위 조항이다. 우크라이나의 정식 NATO 가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와 유사한 수준의 안보 공약을 미국으로부터 확보하는 것은 전쟁 재발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단순한 평화를 넘어, 지속 가능한 안보를 제공하려는 유럽의 전략적 요구를 보여준다.
4. 모든 것은 두 정상에게: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최종 담판
제네바에서 실무 협상가들이 아무리 치열하게 논의하더라도, 최종적인 평화 계획의 운명은 단 두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협상에 정통한 한 익명의 관계자는 이 상황을 명확하게 요약했습니다.
"두 정상이 만나기 전에는 어떤 것도 합의된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최상위 결정 구조는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확인되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최종적인 결정권은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상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직접 언급하며, 실무 협상의 결과를 넘어서는 최종 담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협상의 결과가 마지막 순간까지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5. 조심스러운 낙관론: 협상가들이 말하는 '의미 있는 진전'
복잡하게 얽힌 제안들 속에서도 협상장의 분위기는 의외로 긍정적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양측 대표들은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내비쳤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협상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전체 과정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건설적이고 의미 있는 회의와 하루를 보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우리는 매우 좋은 진전을 이뤘으며, 우크라이나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라고 화답했다. 여기에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우리의 현재 제안은 아직 최종본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의 많은 우선순위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덧붙여 우크라이나의 핵심 이익이 논의에 반영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와중에도 핵심 당사자들이 이처럼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은, 평화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는 단 하나의 정답을 가진 방정식이 아니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구상, 유럽의 독자적 목소리,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주권 수호 의지가 충돌하고 조율되는 복잡한 과정의 결과물이다. 동결 자산 처리 방식부터 군사력 규모, 영토 문제에 이르기까지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제네바의 협상 테이블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 복잡한 밑그림은 과연 실무진의 조율을 통해 완성될 것인가, 아니면 결국 두 정상의 손에 의해 단번에 결정될 것인가? 제네바에서 시작된 평화로 가는 길은 이제 막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이번 협상이 갖는 역사적 무게감을 다시금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는 단지 총성이 멈추는 '정전(Ceasefire)'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제네바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안, 즉 미국의 '현실론'과 유럽의 '원칙론'은 겉보기엔 충돌하는 듯하지만, 실은 진정한 평화를 위해 반드시 봉합되어야 할 두 조각의 퍼즐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전쟁 종료가 아니라,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고 국제 질서의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는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부디 이번 협상이 강대국들의 차가운 계산기로 두드려진 '이익의 분배'로 끝나지 않고,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땅에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가져오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