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시인 한정찬의 "삶에 고인 언어들 1"
별꼴
선을 긋다가
또 선을 긋다가
선이 맞닿았다.
세모꼴도
네모꼴도 아닌
원이 되었다.
별꼴이 내 눈에
들어와
공명(共鳴)하고 있다.
세모꼴 네모꼴을
겹쳐도
별꼴은 아니다.
꽃잎 다섯 장인
지상의 꽃들이여
저 천상의 별꼴을
아시는가.
별 한 줌이
별꼴로 내 찻잔에
풍덩 빠졌다.
잠시 머무르다가
별꼴이 꼴값하고 있다.
갈 바람에 파란 낙엽이
꼴값 떨며
우수수 날리고 있다.
참 꼴값하는
별꼴이다.
아무리 바라봐도
놀라운 별꼴이다.
윤슬
스쳐 간 것은 지나갔지만
사라진 것은 정말 아니다.
희미해진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없어진 것은 더욱 아니다.
영혼아,
잠들지 못한 영혼아
저 해변의 모래밭을
맨발로 걸어 보라.
육체여,
몸부림치는 육체여
섬 바위 파도 소리를
시시로 들어 보라.
사랑아,
고독에 몸부림치는 사랑아
괭이갈매기 울음을
애절하게 느껴보라.
삶이여,
날마다 태어나는 삶이여
억센 노동의 눈물을
뜨겁게 바라보라.
지나간 것은 지나갔지만
사라진 것은 정말 아니다.
희미해진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없어진 것은 더욱 아니다.
낮달
그대는 죽어서도
깐죽대다가
낮달이 되었나.
구름이 되고
해무가 되고
안개가 되어
그대는 죽어서도
앞이 안 보이는
낮달로 떴나.
구름 위 속 살처럼 맑은 햇살
그것도 모르고 구름이 되었나.
바닷속 무궁한 생명의 숨소리
그것도 모르고 해무가 되었나.
지상의 현란하고 찬란한 사랑
그것도 모르고 안개가 되었나.
아,
낮달이여, 눈먼 낮달이여.
깐죽거리다 밤이 되어버린
낮달이여.
구름이 되고
해무가 되고
안개가 되어
그대는 죽어서도
앞이 안 보이는
낮달이다.
말(言語)
예쁜 말하는
사람은
선행을 사랑처럼
실천하는 사람이다.
예쁜 말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사랑처럼
노래하는 사람이다.
고운 말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랑을
가꾸는 사람이다.
고운 말하는
사람은
은혜로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다.
정다운 말하는
사람은
덕을 쌓는 사랑을
가꾸는 사람이다.
정다운 말하는
사람은
지순한 사랑을
키워가는 사람이다.
정신적 재활용품
사용하거나
사용한 물건을
소중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사용하게 하는 일은
재활용품이다.
칠십을 살아온 내게
정신적 재활용품이
있기나 한가.
참 궁금하다.
언어가 그렇고
지식이 그렇고
행동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눈 닦고 봐도
재활용품은 영영
보이질 않는다.
자신 있게 나눌
빈손의 재활용품
재활용품이 있기나 한지
정말 궁금하다.
그 참, 그래.
늦었지만, 정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집자묵장필휴(集字墨場必携)의
심오한 글 정독해
무형의
내 정신적 재활용품을
다듬어 남겨야겠다.
* 집자묵장필휴(集字墨場必携) : 목간과 죽간 글씨부터 중국 최고의 글씨만을 뽑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집자(集字)의 놀라운 세계(고시·주역·시경에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대 명가·명구·시가와 교훈을 망라해 읽는 감동을 얻을 수 있음.)를 볼 수 있다.
삶은
삶은
고독을 안고 가는
감사의 기도다.
삶은
외로움을 밀고 가는
믿음의 희망이다.
삶은
인내를 넘는 것은
전환점의 피닉스다.
삶은
향기가 묻어 나는
영혼의 십자가다.
삶은
시간 위에 뒤얽힌
조용한 기다림이다.
삶은
길섶에 앉은 햇살처럼
신명 난 축제장이다.
삶은
일을 준비하는
인생의 여정이다.
삶은
힘겨운 숨결 고르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삶은
쓸쓸함을 느끼는
진지한 기도다.
삶은 슬픔을 달래는
경건한 희망이다.
오로지, 그리고
진실하라.
오로지 한결같은 믿음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실천하라.
덕 쌓는 선행이다.
이웃사랑 실천이다.
노래하라.
즐거운 축제다.
흥겨운 신명이다.
봉사하라.
희생의 선행이다.
희망의 보람이다.
함께하라.
동행하는 지팡이다.
같이하는 사다리다.
바라보라.
마주 보는 두 눈이다.
조율하는 두 마음이다.
이해하라.
앞이 보이는 게임이다.
부대끼는 희열이다.
사랑하라.
까닭 없는 그 이유다.
조건 없는 그 상대다.
영원 하라.
변함없는 약속이다.
아낌없는 사랑이다.
가을 농막에서
보석 같은 햇살이
아주 게을러 참 곱다.
진주 같은 그림자가
비스듬히 누워 참 예쁘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꼭 씨앗 되어야 할
종자가 가지런히 도열하고
꼭 뿌리가 되어야 할
덩이뿌리 줄기가 잠을 잔다.
어디 이뿐이랴.
비닐하우스 밖에는
채소가 되어야 할
꽃이 되어야 할
구근류가 실눈 뜨고 있다.
농장 가장자리에는
나무들 보초병처럼 도열하고
수천 개의 눈 들이
시방(十方)을 응시하고 있다.
보석 같은 햇살이
아주 게을러 참 곱다.
진주 같은 그림자가
비스듬히 누워 참 예쁘다.
한정찬
□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시전집 2권, 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