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이 기억력·집중력을 바꾼다
과학자가 몸으로 증명한 뇌가소성의 힘
뉴욕대학교의 촉망받는 신경과학자 웬디 스즈키는 연구 인생의 정상에서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연구 실적, 교수 임명, 수상 경력 등 외부의 성공은 충분했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텅 비어 갔다. 인간관계는 파편처럼 흩어지고 일상은 연구실과 강의실에 갇혔으며, 감정은 무디게 식어갔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왜 내 뇌는 이렇게 지쳐 있을까?’라는 질문이 뒤늦게 찾아왔다. 해결책은 휴식이 아니었다. 그녀가 발견한 돌파구는 뜻밖에도 움직임, 즉 운동을 통해 뇌를 다시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체육관으로 간 뇌과학자》는 바로 그 ‘몸으로 쓴 뇌과학 보고서’다.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뇌가소성과 운동의 관계를 파헤친 기록이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뇌가 어떻게 변화하고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지 증명한 자기 실험의 연대기다.
뇌가소성은 인간의 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경험·학습·감정적 자극에 따라 지속적으로 회로를 재설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스즈키는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던 과학자였지만, 정작 자신의 뇌가 어떻게 지쳐 왔는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번아웃 상태에서 그녀는 ‘뇌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뇌 전체를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기력과 의욕 저하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특정 뇌 영역만 과도하게 사용되는 ‘불균형 사용’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이후 그녀의 실험적 여정을 이끈 핵심 질문이었다.
스즈키는 운동을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뇌 자극 실험’으로 간주하며 체계적으로 관찰을 시작했다. 그녀가 체육관에서 실행한 프로그램은 고강도 운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리듬의 움직임이었다. 놀랍게도 운동 직후 그녀의 기분은 즉각적으로 개선됐고, 이후 연구 노트 작성, 강의 계획 정리, 실험 설계 과정에서 집중력 증가와 기억 유지력 향상을 명확히 체감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운동이 단순한 혈액순환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마와 전전두엽을 직접 활성화하여 창의적 사고·기억 부호화·주의조절을 강화하는 것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이는 그녀가 학문적으로 연구하던 기억 메커니즘과 완전히 맞아 떨어졌다. 즉, 운동은 뇌가소성의 속도를 실시간으로 끌어올리는 촉매였던 셈이다.
스즈키는 운동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뇌의 변화는 움직임뿐 아니라 새로운 감각 자극과 낯선 경험에 대한 반응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녀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뇌 깨우기 실험’을 제안한다.
그림 작품을 4분간 집중해 바라보기
해본 적 없는 요리나 새로운 식문화 시도하기
향·소리·질감 등 특정 감각에 의식적으로 집중하기
새로운 주제의 강연·팟캐스트를 들으며 사고 범위를 확장하기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감정·주의집중·기억 회로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뇌가소성 활동으로 설명된다. 성인의 뇌는 더딘 것이 아니라, 자극이 부족한 것이다. 뇌가 ‘깨우는 신호’를 요구하고 있었음을 스즈키는 자신의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책의 가장 큰 의의는 ‘누구나 뇌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 스즈키의 실험은 대규모 장비나 전문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깅하며 “나는 강하다”고 말하는 인텐사티, 낯선 미각에 집중하는 간단한 식사 실험, 일상 속 단 몇 분의 오감 각성 활동만으로도 뇌 회로는 강화·확장·재배치된다.
이는 단순한 자기계발 논리와 다르다. 신경과학적 구조와 실제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뇌가소성의 현실적 실천법이기 때문이다. 번아웃·우울·주의력 저하에 시달리는 성인에게 이 책은 ‘의학적 치료’가 아니라 ‘뇌 사용법의 재정렬’이라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
《체육관으로 간 뇌과학자》는 운동을 예찬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성인이 스스로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 증명서다.
번아웃에서 벗어난 스즈키는 더 나은 강의, 더 깊은 연구, 더 안정된 감정, 더 건강한 인간관계로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었다.
책은 말한다.
“뇌를 움직이면 삶도 움직인다.”
스즈키의 실험은 과장된 영감이 아니라,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신경과학적 실천의 기록이다.
성인의 뇌는 이미 굳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자극하면, 제대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삶 전체에 번져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