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종종 사실과 다른 기록으로 남을 때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해(渤海)의 건국자 대조영(大祚榮)’ 또한 그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대진국(발해)의 실질적 뿌리는 대조영이 아닌 그의 부친, 대중상(大仲象) 이라는 역사 해석이다. 기존 학계는 698년 대조영이 국호를 진(震)으로 정한 시점을 발해의 건국으로 본다. 하지만 이보다 30여 년 앞선 669년, 대중상이 이미 ‘대진국(大震國)’을 세웠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지역 세력의 봉기나 부족 연합체가 아니라, 고구려 유민들이 중심이 된 독립 국가의 출현이었다.
대중상은 고구려 멸망 즉시 만주 일대에서 고구려 계승국의 재건 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아들 대조영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세력을 확장해 후일 국가 체계를 완성했다. 따라서 대진국의 실질적 건국자는 대중상이며, 대조영은 이를 제도적으로 계승·확립한 2대 군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역사학은 여전히 ‘발해=대조영 건국’ 이라는 공식을 고수한다. 이에 대해 대진국 연구자들은 아버지를 1대로 인정하지 않고 아들을 건국 시점으로 삼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역사적 불균형 이라 비판한다. 더구나 669년 대진국(발해)의 성립부터 926년 멸망까지 약 260년간 지속된 국가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구려-발해(대진국)로 이어지는 동북아 한민족사의 중요한 연결 고리, 발해의 역사를 대중상으로부터 시작되어 대조영으로 이어진 계승의 역사로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이란 시간은 고구려와 발해의 연결고리를 끊어 놓기에 충분한 역사 공백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