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이 사라지는 나라
- ‘영끌’과 ‘N포’가 그린 잔혹한 생존지도
청년 세대가 더 이상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취업은 좁아지고, 부동산은 손 닿을 수 없고, 물가는 연일 고공비행을 이어가자 청년들은 ‘영끌’, ‘N포’, ‘헬조선’이라는 표현으로 현실을 요약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구조적 절망의 기록이다.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당장의 생존만을 고민해야 하는 청년들이 급격히 늘면서 한국 사회는 ‘청년이 사라지는 국가’라는 위험한 경고음을 듣고 있다. 청년들의 피로감, 체념, 그리고 현실 도피가 심화되는 지금, 이러한 현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청년 체념의 시작은 고용·주거·교육·복지 등 핵심 구조의 불안정에서 비롯되었다. 안정적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은 공채 시즌을 기다리던 시대에서 각종 단기 계약직과 플랫폼 노동을 전전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학력 수준과 스펙 경쟁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보니 미래 설계는 점차 불가능한 선택이 되어 갔다. 이는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 등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N포 현상은 게으름이나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자산 격차가 세대를 갈라놓으면서 부모의 경제력이 청년의 삶을 결정하는 불평등 구조가 강화되었다.
‘영끌’과 ‘빚투’는 투기나 모험적 소비가 아니라, 청년이 느끼는 생존의 다른 표현이다. 급등한 부동산 가격과 멈추지 않는 자산 인플레이션 속에서 청년들은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산다"고 믿게 되었다. 사회 이동성의 창구가 자산으로 전환된 이후, 노동만으로는 미래를 확보할 수 없다는 체념이 급속히 자리 잡았다. 영끌은 그 체념의 반대편에서 나온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빚까지 끌어다 투자하지 않으면 계층 상승이 불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자산 시장은 청년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영끌 이후의 삶은 더 가혹했다. 빚 상환 부담, 금리 인상, 집값 변동성 앞에서 청년들은 지속적인 불안과 심리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이는 청년층의 번아웃과 결합하며 일상적 피로가 극단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았다.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은 청년들의 정신적 체력을 급격히 고갈시켰다. 취업 준비, 경제적 압박, 사회적 비교, 가족 지원 부담까지 겹쳐 일상적 소진이 만성화되었다. 번아웃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며, 청년은 이미 여러 영역에서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고 있다. 피로가 극대화되면 체념은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찾아온다. 더는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은 현실 도피 욕구를 강화시켰다. 극단적 미니멀리즘, 최소 생계 유지로만 버티는 생활 방식,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는 형태의 회피 전략, 심지어 해외 이주를 자주 검색하는 경향까지 모두 ‘도피의 심리’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을 견디기 어려운 청년들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거나, 최소한 부담이 덜한 삶을 선택하려 한다. 이는 사회가 청년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의 총량’이 거의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청년 정책은 지난 수년간 양적으로 늘었으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취업 지원 정책은 단기적 성과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주거 정책은 실수요자인 청년보다 투기적 수요 억제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졌다. 청년 자산 형성을 위한 정책들은 절차가 복잡하거나 대상이 협소하여 체감도가 낮았다. 무엇보다 청년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체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상담 접근성은 낮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청년들은 스스로 문제를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만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사회가 청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청년 번아웃과 체념은 구조화된 문제로 고착되었다.
청년이 사라지는 국가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청년이 살아야 사회가 지속된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구조를 재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안정적 주거 지원, 재산·소득 격차 완화 정책, 지속 가능한 일자리 확대, 정신 건강 지원 체계 강화가 핵심이 된다. 청년 세대가 미래를 다시 상상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안전망과 사회적 신뢰 회복이 필수다. 청년의 현실 도피는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사회적 경고이므로, 이 문제는 공동체 전체가 해결해야 한다. 국가의 정책, 기업의 책임, 사회적 연대가 함께 작동할 때 청년들은 더 이상 절망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이 체념하고 떠나는 사회는 더 이상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다. 영끌과 N포는 청년들의 무책임한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한 희망을 대신 설명하는 언어다. 청년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못한다면, 현실 도피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국가의 미래 또한 함께 침식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많지 않다. 청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