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 신(神)을 위한 개혁인가, 돈(錢)을 위한 변혁인가?

-사우디의 붉은 모래바람: 이것은 개혁인가, 변혁인가?

-사우디의 변화는 '개혁(Reformation)'의 신호탄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겉모습을 바꾸는 거대한 '변혁(Transformation)'의 몸부림인가?

-율법이라는 낡은 지도가 더 이상 길을 알려주지 못할 때, 인간은 비로소 새로운 지도를 찾기 시작한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불과 십수 년 전, 내가 기억하는 리야드의 하늘은 짙은 종교적 엄숙함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해가 정해진 궤도를 돌듯, 도시 전체가 하루 다섯 번 울려 퍼지는 아잔(Adhan,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맞춰 숨을 죽였다. 상점 문은 굳게 닫혔고, '무타와'(Mutaween)라 불리는 종교 경찰의 매서운 눈초리는 여성의 검은 아바야(Abaya) 자락이 규율을 벗어나지 않는지, 남성들의 걸음이 모스크를 향하는지를 감시했다. 그 붉은 모래바람 속에서, 변화란 신성모독과도 같이 여겨졌다.

 

그런 내가 오늘날 마주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소식들은, 마치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낯설고 아찔하다.

 

메마른 사막의 밤하늘을 K-Pop의 현란한 조명과 선율이 수놓았다는 소식(방탄소년단 등의 공연 유치), 한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성이 운전대를 잡고(2018년 여성 운전 허용), 심지어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 여권을 들고 홀로 국경을 넘는다는(2019년 여행 자유화) 사실은, 내가 알던 그곳의 공기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수백조 원을 쏟아붓는 미래 도시 '네옴시티(Neom City)'의 청사진이 펼쳐지고, 전 세계 관광객을 향해 문을 활짝 열기 위해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한다. 심지어 70여 년간 금기 중의 금기였던 술 판매가 외교관 등 특정 조건 하에 허용되고, 거리에서 공공연히 크리스마스 장식이 등장하는 모습에 이르면, 깊은 현기증마저 인다.

 

이 모든 거대한 파도의 중심에는 '비전 2030(Vision 2030)'이라는 이름표를 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서 있다. 석유에 기댄 낡은 경제 구조를 벗어나,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을 현대화하겠다는 이 거대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는, 그 속도와 규모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다.

 

이 경이로운 변화의 물결을 바라보며,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솟아오른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이 현상은, 과연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종교가 스스로의 교리를 수정하며 나아가는 '개혁(Reformation)'의 신호탄인가? 아니면, 신앙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생존을 위해 겉모습을 바꾸는 거대한 '변혁(Transformation)'의 몸부림인가?

 

오랜 기간 이슬람권의 벗들과 그들의 경건한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 질문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

 

먼저, 이것이 신학적 '개혁'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젓는다.

 

종교의 '개혁'이란, 그 신앙의 근간이 되는 경전과 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신학적 씨름을 전제해야 한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경전의 재발견을 통해 구원의 교리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듯이, 진정한 개혁은 신(神)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영적 각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우디의 지금 변화는 어떠한가?

 

꾸란(Qur'an)이나 하디스(Hadith)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해석이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슬람의 가장 보수적인 와하비즘(Wahhabism)의 신학적 근간이 도전을 받거나, 배교와 신성모독에 대한 엄격한 율법이 신학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보는 것은, 신학적 고뇌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의한 '전략적 선택'이다.

 

'비전 2030'의 핵심 목표는 석유 의존 경제의 탈피이다. 고갈될 자원에 기댄 미래는 사상누각임을 깨달은 젊은 지도자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 '엔터테인먼트'와 '관광'이라는 새로운 유전을 파기로 결정했다. GDP의 10%를 관광 수입으로 채우겠다는 목표(약 100조 원 투자)는 야심 차다 못해 절박하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 그리고 관광객이 스스럼없이 찾아올 수 있는 '매력적인 환경'이 필수적이다.

 

여성에게 운전을 허락한 것은, 인권의 신장이라는 측면도 있겠으나, 그보다 앞서 '여성 경제 활동 참여율'이라는 GDP 통계치를 높이기 위한 경제적 결단이다. K-Pop 콘서트를 유치하고 테마파크를 짓는 것은, 자국민의 여가 비용이 두바이나 바레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 포석이다.

 

72년 만의 주류 판매 완화나 크리스마스 허용 역시, 네옴시티 건설에 필요한 서구의 고급 인력들과 관광객들에게 '이 정도의 자유는 보장한다'는 일종의 시그널이다. 이는 이슬람의 관용이 깊어져서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규제 완화'에 가깝다.

 

즉, 이 모든 변화는 '알라의 뜻'을 새롭게 해석한 결과물이 아니라, '석유 이후의 생존'이라는 지상의 과제를 풀기 위한 고도의 정치·경제적 '변혁'이다. 이는 신앙의 개혁이 아니라, 국가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혁'은, 그들의 영혼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한 인간의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말을 거는 심정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이 화려한 변혁의 이면에서 거대한 '영적 공허'를 본다.

 

수 세기 동안 사우디 사회를 지탱해 온 두 개의 기둥은 '석유(Black Gold)'라는 물질적 부(富)와 '와하비즘'이라는 강력한 종교적 정체성이었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을 규정하는 운영체제(OS) 그 자체였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누구를 만나고, 언제 기도해야 하는지, 그 모든 삶의 나침반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였다.

 

그런데 지금, 국가가 주도하여 그 나침반의 자성을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고 있다.

 

'비전 2030'은 젊은 세대에게 "석유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이제 율법의 엄격함이 아니라, 경제적 풍요와 세속적 즐거움이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속삭인다.

 

과거에는 '경건한 무슬림'이 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네옴시티의 유능한 엔지니어'가 되거나, '관광 산업의 역군'이 되는 것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율법의 나침반이 흔들린 자리에, '자본'과 '국가주의'라는 새로운 나침반이 놓이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의 '개혁'이 아니라, 이슬람의 '도구화'이다.

 

과거의 이슬람이 국가를 통치하는 '목적'이었다면, 현재의 이슬람은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신앙의 본질과 알라를 향한 경외심은 괄호 안에 묶인 채, 관광객 유치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전통문화'로 존재하게 될지 모른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나는 이 지점에서, 한 영혼이 마주할 실존적 공허를 생각한다.

 

삶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던 절대적 기준이 경제 논리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볼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는가? 하루 다섯 번의 기도가 채워주지 못하는 내면의 갈증을, 과연 테마파크의 화려한 불빛과 K-Pop의 감미로운 선율이 채울 수 있는가?

 

신앙의 뼈대가 녹아내린 자리를 세속적 유희와 물질적 풍요가 대신할 때,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결국 더 깊은 허무와 정신적 방황이 아닐까.

 

사우디의 붉은 모래 바람은 지금,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불고 있다.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신앙의 '개혁(Reformation)'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변혁(Transformation)'이다. 낡은 석유 시추선을 버리고,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라는 화려한 유람선으로 갈아타려는 거대한 항해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변혁의 항해가, 과연 그들의 영혼을 구원의 항구로 인도할 수 있는가?

 

나는 오랜 시간 그 땅을 위해 기도해 온 한 사람으로서, 이 거대한 '변혁'이 역설적으로 '복음'의 자리를 예비하고 있음을 직시한다.

 

율법이라는 낡은 지도가 더 이상 길을 알려주지 못할 때, 인간은 비로소 새로운 지도를 찾기 시작한다. 엄격한 종교적 행위가 나의 실존적 불안을 해결해 주지 못함을 깨달을 때, 영혼은 참된 안식과 생명을 갈망하게 된다.

 

사우디의 문이 열리고 있다. 그것은 관광객과 자본을 향한 문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진리를 향한 영혼의 문일지도 모른다.

 

작성 2025.11.12 21:40 수정 2025.11.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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