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52화 놀이와 배움이 만나는 순간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아주 작은 지혜가 순간을 바꾼다

우리는 함께 놀았고, 함께 배웠고, 함께 웃었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김기천]

 

일상 속에서 스며드는 배움의 장치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자음·모음표가 붙어 있다. 한글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가 자연스럽게 글자를 눈에 익히고, 놀이처럼 한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특별한 학습 도구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스며드는 배움의 장치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아내가 씻는 동안 나는 늘 그렇듯 다이어리와 일기, 그리고 편지를 쓴다. 하루를 정리하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 중요한 루틴이다. 그런데 종종 그 시간, 아이가 다가온다. “아빠, 나 심심해.” 글을 쓰던 손이 멈추고, 아이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동시에 내 시간도 지키고 싶었다.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거실 벽의 자음·모음표로 향했다.

 

아주 작은 지혜가 순간을 바꾼다

“아들, 글자표 보이지? 여기 있는 글자들을 조합해서 단어를 만들어봐. 그 단어를 아빠한테 퀴즈로 내줘. 아빠가 맞춰볼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기쁨이었다. 

 

아이는 서둘러 글자를 고르고 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빠, 이건 무슨 단어게?” 나는 맞춰보고, 때때로 일부러 틀렸다. 아이의 웃음이 거실에 가득 번졌다. 아이의 손은 글자를 조합하고, 나의 손은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놀아주는 시간이 공부의 시간이 되었고, 공부의 시간이 웃음의 시간이 되었다. 그야말로 1석 2조의 순간이었다.

 

육아는 정답이 아니라 발견의 연속이다

물론 이 방식이 매일 통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아이의 흥미는 언제든 바뀌고, 매일은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그러나 그날의 발견은 분명했다. 육아에는 완벽한 계획도, 완전한 정답도 없다. 다만 매일의 순간에 스며드는 작은 지혜가 있다. 그 지혜는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나는 나의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고, 아이의 손끝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모습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부모가 성장한다는 것은 이런 순간을 알아보는 감각을 갖게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육아의 중요한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 있는 시간의 질은 아주 작은 선택에서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오늘 아이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하려 하고 있는가?

 

우리는 함께 놀았고, 함께 배웠고, 함께 웃었다
아이는 무언가를 스스로 익혀가고 있었고, 나는 나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하루에 함께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일상은 늘 균형을 묻는다. 그러나 균형은 거대한 계획에서 오지 않는다. 그때그때 건네지는 조그마한 지혜 속에서 피어난다. 

 

오늘 우리가 함께한 이 작은 시간은 내일의 우리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5.11.12 19:11 수정 2025.11.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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