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질서연구소가 세계관의 충돌: 21세기 국제질서를 사상으로 이해하기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2022년 발간된 21세기 국제질서 맥락으로 이해하기: 패권 전환기 속 대한민국의 미래의 흐름을 잇는 후속작으로, 국제정세의 핵심 동력으로 세계관과 사상적 갈등을 주목한다.
최근 국제질서는 거센 요동을 겪고 있다. 자유무역은 보호주의 확산으로 후퇴했고, 글로벌 공급망은 국가별 이해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지며 전쟁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온 일극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구축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내부적으로 공동체 균열을 겪고 외부에서는 정당성과 우월성에 대한 의심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세력 재편을 넘어 탈냉전기 세계를 지탱해온 자유주의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세계관의 충돌은 이러한 격변을 국가 간 국력 경쟁이나 이해관계 충돌이 아니라 문명과 사상의 충돌로 바라본다. 군사력과 경제력, 기술력 경쟁의 바탕에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정의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신념, 즉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의 전략 경쟁을 이끄는 것은 세력균형이 아니라 세계관에 기반한 사상적 충돌이라고 판단한다.
책은 역사 속 결정적 전환점을 세계관과 사상의 흐름으로 다시 읽는다. 고대 제국의 약육강식 논리, 계몽주의와 칸트의 영구평화론, 19세기 현실주의와 세력균형 사상, 미국 예외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냉전기의 이념 대립, 탈냉전기의 신자유주의, 중국과 러시아가 내세우는 다극적 세계관 등 인류 역사를 움직여온 사상적 흐름을 쉽고 직관적으로 조망한다.
저자는 오늘날 위기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미국 패권의 약화로 국제질서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둘째, 보호주의와 국가주의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통합에서 블록화로 되돌아가고 있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내부가 균열되면서 보편적 가치의 우월성과 정당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전쟁, 무역 갈등, 가치 논쟁을 세계관 충돌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유무역의 약화, 민주주의의 자기 회의, 자유주의 리더십의 설득력 약화 등 다양한 현상을 철학과 정치, 역사적 관점으로 풀어내며, 오늘의 국제 이슈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특히 저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내부의 철학적 위기와 정치의 실종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타협과 조정의 기술이 아닌 선악의 전장으로 변질되면서 상대를 타협할 파트너가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극단적 대립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포퓰리즘과 극단주의가 부상하고 권위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러한 혼란의 근원을 자유주의의 변질에서 찾는다. 계몽주의에 기반한 고전적 자유주의는 포스트모던 진보주의로 이어지며 철학적 일관성을 잃고 급진적 자유지상주의와 급진적 평등주의가 공존하는 모순된 이념으로 변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갈등의 장으로 만들고, 극좌와 극우를 동시에 강화하며 타협의 공간을 좁혀 국제정치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정하늘은 WTO 분쟁 대응 최전선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켜온 국제통상 전문가다. 그는 한미 철강·세탁기 분쟁, 한일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 등 국가가 참여한 WTO 분쟁의 상당 부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미·중 경쟁 격화, WTO 기능 마비, 자유무역 약화 등 국제질서의 균열을 목도하며 기존 법과 제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됐다.
이후 국제법질서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국제법과 글로벌 거버넌스가 맞물리는 지점을 탐구해왔으며, 이번 신작을 통해 세계관이라는 사상적 힘이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2025년 6월 영문판으로 먼저 출간돼 아마존 세계정치, 국제관계, 세계화, 21세기 역사 분야 신간 1위를 기록했다. 다극화된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분석을 넘어 실천적 통찰을 제시하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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