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계약서 한 장, 청년의 인생을 흔들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보증금 미반환’ 이제는 뉴스가 아닌 일상 속 단어다. 한 장의 계약서가 청년의 인생을 뒤흔드는 시대다. 서울시는 이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대학생, 사회초년생, 유학생 등 부동산 경험이 부족한 청년층을 위해 ‘청년 맞춤형 부동산 교육’을 개설한 것이다.
11월 1일 열린 3회차 강의엔 200명 정원에 525명이 몰렸다. 정원을 초과한 열기만 봐도, 지금의 청년들이 얼마나 불안한 주거 현실 속에 놓여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 계약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법과 돈, 신뢰가 교차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계약은 어렵고, 전문가가 알아서 하는 일”로 치부해왔다. 청년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지식의 방패’를 갖추지 못한 채 시장에 내몰린 셈이다.
‘계약 전·중·후 단계별’ 실무 교육, 이제야 제자리를 찾다
서울시의 교육 프로그램은 실무 중심이다. 시세·등기부 확인, 자금 이동 시 계좌이체 원칙,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 확인 등 실제 계약 과정의 ‘핵심 체크리스트’를 다룬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다.
‘계약 전’에는 위험을 예측하고, ‘계약 중’에는 실수를 방지하며, ‘계약 후’에는 권리를 지키는 법을 가르친다.
특히 ‘보증보험 가입 여부’, ‘등기부등본의 근저당 내역 확인’ 같은 구체적 사례 중심의 내용은, 책에서 배울 수 없는 현장형 법률 감각을 제공한다. 실제 한 참가자는 “계약서 한 장이 이렇게 위험할 줄 몰랐다”며 “앞으로는 반드시 등기부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는 교육의 목적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행동 변화임을 보여준다.
청년의 주거권은 ‘복지’가 아니라 ‘역량’이다
청년 주거 문제는 오랫동안 복지정책의 일부로 다뤄졌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번 접근은 다르다. 이제 ‘주거 안정’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역량 강화’의 문제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공간본부장은 “전세사기 피해의 상당수가 2030세대에 집중되고 있다”며 “스스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청년을 보호 대상이 아닌 ‘행동하는 주체’로 본 것이다.
교육에 참여한 98%가 만족했다고 답했고, 심화 과정 개설을 요청한 것은 단순한 ‘호응’이 아니다. 청년들이 주거 문제를 ‘운’이 아닌 ‘학습과 실천’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진짜 변화는 ‘찾아가는 교육’에서 완성된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자치구와 협력해 ‘찾아가는 부동산 교육’을 확대한다. 주말과 야간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실제 계약서 분석과 사례 중심의 심화 과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확산’과 ‘지속성’이다.
교육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부동산 거래의 기본 문해력’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장기적 안전망이다. 학교나 직장 내 필수 교육으로 정착된다면, 청년들의 부동산 피해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부동산의 진짜 공정은 ‘정보의 공평함’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부동산 시장은 ‘정보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싸움이었다. 중개인, 임대인, 건물주가 가진 정보는 많지만, 세입자는 늘 ‘추측’에 의존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있다. ‘정보의 공평함’이 곧 ‘공정한 시장’의 기준이 되고 있다.
서울시의 이번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사회 구조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출발점이다. 청년들이 부동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약서를 읽고, 등기부를 해석하며,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정의 첫걸음이다.
청년의 지식이 곧 부동산 시장의 안전망이다
“모르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이다.” 이제 청년에게 필요한 건 돈보다 정보, 그리고 정보보다 판단력이다. 서울시의 ‘청년 맞춤형 부동산 교육’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거 정의’의 실험이다. 한 사람의 지식이 한 사람의 피해를 막고, 그 지식이 모여 도시의 안전망이 된다면, 그보다 더 값진 공공정책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