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넬슨 만델라의 희망
우리는 종종 '절망'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입에 올린다.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관계가 어긋나도,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갇힌 듯해도, 우리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절망의 가장 밑바닥, 그 심연(深淵)에 대해 생각해 본다. 27년. 한 인간의 청춘과 중년, 장년이 통째로 갇혀버린 시간. 1만 일이 넘는 낮과 밤을 차가운 감옥의 돌바닥 위에서 보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넬슨 만델라(1918-2013).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인권', '대통령', '노벨평화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모든 영광의 이전에, 그에게는 '반역죄'라는 낙인과 27년의 감옥이 있었다.
절망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것들
1962년,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에 맞서 싸우다 체포된다. 1952년부터 흑인 인권운동의 선봉에 섰던 그의 대가였다.
감옥은 단순히 자유를 속박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공간이었다.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이듬해에는 큰아들이 끔찍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남아있는 가족들은 어떠했는가. 아내와 딸들은 강제로 흑인 거주 지역으로 추방당했고, 둘째 딸은 그 충격과 고통 속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 아내의 남편이고 두 딸의 아버이인 만델라는, 그 모든 고통의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옥 창살을 붙잡고 울부짖는 것 외에는.
자신이 신념을 지키는 동안, 가족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한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신념은 과연 이 모든 희생보다 가치 있는 것인가? 이 절망의 끝에서 그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원망, 분노, 그리고 복수심. 그것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 것이다.
가장 어두운 밤에 띄운 쪽지
그가 감옥에 갇힌 지 14년째 되던 해였다. 50대에 접어든 그에게 큰딸이 면회를 왔다. 갓 태어난 손녀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편지로 받았던 터였다.
딸이 아버지 만델라에게, "이름을... 지으셨나요?"
만델라는 말없이 작은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딸은 조심스럽게 그 쪽지를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작은 쪽지에 적힌 이름. 그것은 '희망'(Hope)이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숨을 멈출 수 밖에 없다. 어떻게 14년의 절망 속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들 수 있는가. 어머니를 잃고, 아들을 잃고, 가족의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그가, 어떻게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절망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는 절망의 가장 밑바닥까지 걸어 들어가, 그 중심을 맨손으로 움켜쥔 사람이었다. 그가 내민 '희망'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14년간의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영혼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백인 정부가 그의 육신은 가둘 수 있었으나, 그의 정신은 꺾지 못했다는 저항의 증거였다. 그것은 이 어둠이 절대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었다.
이 '희망'이라는 이름은, 그날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 모두의 이름이 되었고, 전 세계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깃발이 되었다.
영광은 일어서는 데 있다
1990년 2월, 그는 27년 만에 감옥 문을 나선다. 세상은 그가 복수의 칼을 들 것이라 예상했다. 350년에 걸친 인종 분규의 피를, 더 큰 피로 갚을 것이라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가두었던 백인 정부와 협상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의 '희망'은 복수가 아니었다. 그가 꿈꾼 것은 흑인이 백인을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나는 일생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소중히 여깁니다. ... 필요하다면, 나는 이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증오의 고리를 끊어냈다. 27년의 고통을 승화시켜,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고(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1993년).
그의 삶은 우리에게 '희망'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희망은 그저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행동'이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절대 넘어지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만델라의 건강이 위독해지고, 전 세계가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그 순간, 병원 밖에 모인 사람들이 든 것은 분노의 구호가 아닌 '촛불'이었다. 그 촛불이야말로 그가 14년 차 감옥에서 띄웠던 '희망'의 쪽지에 대한 세상의 응답이었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희망'은 우리 가슴속에 연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