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시「달에게 당부하는 토끼의 중재안 -경주 선언」은 익숙한 설화를 현대적인 맥락과 예리한 현실 인식으로 재해석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새로운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히 '경주 선언'이라는 부제가 시에 무게감과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부여하며 단순한 시를 넘어 하나의 공공재로써의 메시지로 격상시킵니다.
달에게 당부하는 토끼의 중재안 -경주 선언 이종근 1. (취침) 나 이제 자야 하니까 당분간 날 깨우지 마 절구통 깨끗이 씻어놔 2. (출장) 나 이제 쉬어야 하니까 당분간 날 찾지 마 별주부님 따라 용왕님 만나고 올 게 피로한 간은 달에 두고 갈게 간수치나 좀 재 줘 3. (경주) 나 이제 달려야 하니까 초시계 좀 봐줘 경주에서 열리는 달리기 경주야 거북이한테 이기면 불국사 다보탑을 달에게 보여줄게 4. (보상) 신라 금관을 씌워 줄까, 황남빵을 내줄까 |
1. 전통의 전복과 현대적 화자의 탄생:
이 시는 달에 사는 토끼라는 친숙한 대상을 통해 우리에게 깊이 박힌 고정관념을 흔듭니다. 절구질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자신의 피로를 토로하고, 휴식을 요구하며,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보상'까지 당당하게 제시하는 능동적인 화자의 모습은 현대인의 자아와 고뇌를 대변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경쟁하며 소모되는 현대인들의 내면을 시적으로 승화시킵니다.
2. '경주 선언’ 부제가 주는 힘:
'경주 선언’이라는 부제는 시가 단순히 토끼의 푸념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게 향하는 '선언'으로, 시적 화자의 요구와 바람에 공적인 성격을 부여합니다. '경주'라는 지명이 주는 역사적 중후함과 '달리기 경주'라는 중의적 표현은, 이 선언이 단순히 개인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재가 처한 치열한 국제적 경쟁 상황 속에서 제시되는 중요한 대안임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3. 현실 반영과 은유의 탁월함:
시 속의 구체적인 상황들은 우리 현실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집니다. "절구통 깨끗이 씻어놔"라는 재충전을 위한 환경 정비나 부정부패 척결 등의 개혁을, "피로한 간은 달에 두고 갈게 / 간수치나 좀 재 줘"라는 현대인의 피로와 건강에 대한 관심, 나아가 사회 전체의 건강 지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듯합니다. "거북이한테 이기면 불국사 다보탑을 달에게 보여줄게"라는 단순히 승리뿐 아니라, 그 승리가 가져올 문화적 자긍심이나 국가적 위상 상승의 가치를 강조하며, "신라 금관을 씌워 줄까, 황남빵을 내줄까"라는 거시적인 국가 발전과 미시적인 국민의 소박한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 감각을 보여줍니다.
4. 간결함 속의 울림과 확장성:
이 시는 각 절의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간결하고 직관적인 언어를 통해 복합적인 의미를 응축하여 전달합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며, 때로는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와 비판 정신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시인이 갖춘 행정 이력과 정치 경험이 시에 현실적 기반과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더하며, 문학적 상상력에 더해진 통찰력이 시의 확장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합니다.
총평하자면,「달에게 당부하는 토끼의 중재안 -경주 선언」은 구비전승으로 이어진 전통 설화를 재치 있게 변주하여 현대인의 고뇌와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경주 선언'이라는 부제는 시적 화자의 요구가 개인의 바람을 넘어 공공재로써의 메시지이자 비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시대를 향한 ‘경주 선언’에 동참하게 만드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집니다. 시인 특유의 통찰력과 문학적 상상력이 빛을 발합니다.
이종근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시창작과정 및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하고 중앙대학교(행정학석사)를 마침.『미네르바』및『예술세계(한국예총)』신인상으로 등단함. 그리고《서귀포문학작품상》,《박종철문학상》등을 수상함. 아울러 <충남문화관광재단> 등의 창작지원금을 수혜함. 시집으로는『광대, 청바지를 입다』,『도레미파솔라시도』등이 있음. onekorea200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