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뿌려 거름이 된, '어른' 김장하

-돈은 똥과 같다.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된다.

-그는 '소유'가 아니라 '비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완성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감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을 순환시켰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우리는 이 시대에 '어른'이 없다고 한탄한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는 넘쳐나고,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유명인'은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존재 자체로 귀감이 되는 '어른'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정작 '어른'으로 살아내는 법을 잊었다.

 

여기, 그 '어른'의 삶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대통령도, 노벨상 수상자도, 수많은 생명을 구한 의사도 아니다. 그는 경남 진주, 남강이 흐르는 작은 도시에서 60년 가까이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한, 평범한 한약사 김장하(1941~현재)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한국의 슈바이처'나 '겸손한 대통령' 같은 화려한 수식이 붙지 않는다. 그저 '어른 김장하'. 이보다 더 무겁고,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칭호가 또 있을까.

 

"돈은 똥과 같다" - 거름의 철학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은 지독히도 투박하고, 지독히도 정직하다. "돈은 똥과 같다.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것은 그가 60년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지켜낸 삶의 신조이자, 그의 존재 방식 그 자체였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재산을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모아둔' 적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흩뿌렸다'. 그 돈이 꼭 필요한 땅에, 가장 절실한 영혼들에게.

 

우리 시대는 '소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발버둥 친다.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 더 넓은 것을 가져야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빛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김장하라는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소유'가 아니라 '비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완성했다. 그는 돈을 쫓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돈을 거름처럼 부리는 삶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가 평생 흩뿌린 거름이 얼마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철저히 숨겨왔기 때문이다.

 

이름을 지운 손길, '키다리 아저씨’

 

그의 나눔이 우리 영혼을 울리는 이유는, 그가 '익명'의 그늘 뒤에 자신을 온전히 숨겼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한약방을 찾는 환자의 맥을 짚듯 자신의 삶 속에서 짚어냈다.

 

그의 거름이 가장 많이 뿌려진 곳은 '교육'이라는 밭이었다. 그는 수십 년간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했다. 그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다. 그는 '키다리 아저씨'였다.

 

그는 학생들이 행여나 부담을 가질까 봐, '명절 용돈'이나 '책값'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건넸다. 그는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숨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것은 내가 주는 돈이 아니다. 나도 사회에서 받은 것을 잠시 맡아 전달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에게 갚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대신 너희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너희처럼 힘든 다른 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어라."

 

그는 '빚'이 아니라 '사랑'을 물려주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감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을 순환시켰다. 이것이야말로 '거름'의 철학이 맺은 가장 고귀한 열매이다.

 

그의 손길은 교육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진주'라는 자신의 땅을 지키는 뿌리였다. 바른 목소리를 내던 지역 신문이 경영난으로 쓰러져갈 때, 그는 아무 조건 없이 거액을 내놓아 그 숨을 다시 붙였다. 돈이 없어 뜻을 펴지 못하는 지역의 복지관과 시민단체, 문화 예술인들에게 그는 기꺼이 '마중물'이 되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뿌리내린 땅이 척박해지지 않도록, 묵묵히 거름을 뿌렸을 뿐이다.

 

마지막 한 줌까지 흩뿌리고 떠나다

 

2022년, 그의 삶이 MBC 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평생을 피해 왔던 인터뷰와 조명을 왜 허락했을까? 그는 은퇴를 결심하며, "나처럼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되었으면 한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2021년, 그는 60년 가까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남성당 한약방'의 문을 닫았다. 그는 마지막 남은 한약방 건물과 자신의 전 재산을 또다시 공익 재단에 기부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이 평생 외쳤던 '거름의 철학'을 완벽하게 완성해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자신을 한 줌의 재로 남김없이, 이 땅에 흩뿌리고 떠났다. 그는 자신을 위한 기념비 하나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삶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기념비가 되었다.

 

장기려 박사가 찢어지는 그리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성자였다면, 김장하 선생은 탐욕의 시대를 '나눔'으로 살아낸 현자(賢者)이다. 그는 우리에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성공'이란 무엇이며 '부자'란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어른'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이름 없이 섬기는 자이다. '성공'은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남김없이 나누는 것이다.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을 '거름'처럼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김장하 선생의 삶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질주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의 텅 빈 손은, 무엇인가를 움켜쥐느라 경직된 우리의 손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는 비록 현직을 내려 놓고 물러났지만, 그가 흩뿌린 거름은 이미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그가 키워낸 인재들에게서, 그가 돌본 이웃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김장하'라는 이름의 향기를 맡는다. 그는 자신을 지웠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선명한 '어른'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작성 2025.11.10 15:45 수정 2025.11.1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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