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세기가 저문다. 100년의 세월(1924-2024)을 쉼 없이 걷던 한 사람이 흙으로 돌아간다. 제임스 얼 "지미" 카터 주니어.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그러나, 세상은 그를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아닌, '가장 겸손한 영혼'으로 기억한다.
그의 삶은 거대한 역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권력의 중심, 백악관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마지막은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방 두 칸짜리 작은 시골집에서 소박하게 마무리된다. 시세 몇억 원 남짓한 그 집조차, 자신이 떠난 뒤 국립공원관리청에 기부하도록 유언했다. 그는 권력이 주는 모든 유혹을 거부하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그의 삶은, 권력이란 무엇이며, 한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묻는 거대한 질문이다.
권력의 문턱에서 쟁기를 택한 삶
1980년, 그는 로널드 레이건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역사는 보통 여기서 퇴장한 지도자들이 어떻게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지 기록한다. 거액의 강연료, 대기업의 고문직, 화려한 인맥을 통한 사업. 그것이 전직 대통령들이 걸어온 '전통'이었다.
수많은 유혹이 그에게도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담담히 짐을 싸서 고향 플레인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땅콩 농부의 삶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던 땅콩 사업은 1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빚을 갚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펜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담아 33권의 책을 집필했고, 오직 그 인세로 모든 빚을 갚아나갔다. 전직 대통령 연금 21만 달러는 그의 소박한 생활비와 봉사 활동에 모두 쓰였다.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을 고집했다. 주일마다 작은 시골 교회에서 수십 년간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이것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고, 그의 삶 자체였다.
'평균 이하'의 대통령,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
역사가와 정치학자들은 그의 4년(1977-1981)을 종종 '평균 이하'로 평가한다. 그의 임기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경제 위기, 에너지 파동, 그리고 이란 인질 사태라는 치욕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데탕트는 종식되었고, 그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하며 냉전을 심화시켰다. 결국 그는 연방대법관 한 명 임명하지 못하고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정치 공학의 눈으로 볼 때, 그는 실패한 대통령일지 모른다. 그는 너무 이상주의적이었고, 때로는 유약하게 비쳤다.
그러나 바로 그 '실패' 속에 그의 위대함이 숨어있다. 그는 재임 중 베트남전 병역 기피자들을 사면했고, 에너지부와 교육부를 창설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고민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하여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라는 기적적인 평화를 이끌어냈다.
그의 진가는 백악관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서 더 큰 권위를 얻었다. 1982년, 그는 인권 증진을 위해 '카터 센터'를 설립했다. 그는 해머를 들고 '해비타트' 운동에 동참해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집을 지었다. 그의 땀과 헌신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는 평화 협상을 위해 전 세계 분쟁 지역을 누볐고, 수많은 국가의 선거를 감시했다. 그는 기니 벌레와 같은 끔찍한 전염병을 근절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오지를 걸었다. 이 거대한 헌신은 2002년,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주었다. 그의 대통령 임기는 단 4년이었지만, 그의 '인류를 위한 봉사'는 40년 넘게 이어졌다.
"내가 죽어서도 사람들을 귀찮게 하겠지요"
그는 자신에게 쓰이는 세금 한 푼까지 아끼려 했다. 전직 대통령에게는 경호와 사무실 운영 등에 막대한 세금이 지원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연 127만 달러, 조지 W. 부시가 121만 달러, 트럼프가 104만 달러를 사용할 때, 지미 카터는 그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 49만 달러만을 사용했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답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마지막 여정 또한 그의 삶을 그대로 닮아있다. 2024년 12월 29일, 100년의 삶을 마감한 그의 시신은 국립성당의 장례식을 마친 후 고향 플레인스로 향한다. 당초 기차로 운구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생전 그의 한마디가 이를 바꾸었다.
"내 차가운 시신이 여기저기 떠돌게 된다면, 내가 죽어서도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겠죠?"
결국, 그는 군용기를 타고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 77년의 세월을 함께한 아내 로잘린 여사가 먼저 잠든 연못가 버드나무 곁에 나란히 눕는다.
화려한 권력을 뒤로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돌아간 대통령.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겸손함을 잃지 않은 사람. 그의 발자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겸손하며, 또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이야기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