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춘 성전 공사, 다시 일어나라
에스라 5장은 멈춘 성전 공사가 다시 시작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성전 건축을 시작했지만, 주변 민족들의 방해와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 그들의 마음은 낙심으로 굳어졌고,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합리적 포장이 그들의 신앙을 덮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침묵을 오래 두지 않으셨다.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다시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건축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멈춘 신앙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학개와 스가랴의 등장은 단순히 건축 독려가 아니었다.
그들은 백성의 마음을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였다.
학개는 말한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각각 자기의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학개 1:4)
스가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니요, 오직 나의 영으로”(슥 4:6)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일은 상황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된다.
환경이 아니라 영적 각성이 하나님의 역사를 움직인다.
오늘날 우리도 ‘나중에’, ‘지금은 때가 아니야’라는 말을 핑계로 순종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을 보내신다.
멈춘 인생의 현장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 그분의 뜻을 다시 상기시키신다.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유다 장로들은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그들이 다시 삽을 든 순간, 또다시 방해가 찾아왔다.
‘닷드내 총독’이 와서 따졌다. “누가 이 성전을 건축하라 하였느냐?”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에스라 5장 5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을 살피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였더라.”
순종하는 자 위에 하나님의 눈이 있다.
하나님의 시선은 단순한 감시가 아니라, 보호와 인도, 그리고 책임의 시선이다.
우리의 사역이 방해받을 때, 그 이유는 하나님이 눈을 떼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시선을 잊었기 때문이다.
닷드내는 사건을 바사 왕 다리오에게 보고하며 공사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흥미롭다.
그 안에는 유다 장로들이 자신 있게 말한 신앙 고백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5:11)
“예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여 바벨론 왕에게 성전을 헐리게 하였으나,
이제는 고레스 왕이 명하여 다시 짓게 하셨다.”
그들은 변명하지 않았다.
정치적 명분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해 행동했다.
그들의 신앙은 사람의 허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이는 신앙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자존감이다.
결국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됐다.
닷드내의 보고는 오히려 다리오 왕의 재확인을 이끌었고, 그 결과 성전 공사는 정식으로 허락되었다.
사람이 막은 길을, 하나님은 다시 여셨다.
우리가 포기한 그 시점이 하나님의 ‘시작점’일 때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연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완성하신다.
에스라 5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때는 결코 늦지 않다.”
멈춰 있던 성전 공사처럼, 우리의 삶에도 멈춘 기도가 있고, 미뤄둔 순종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지금’이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면, 다시 시작하라.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멈춘 신앙”보다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기뻐하신다.
오늘, 멈춘 자리에서 다시 삽을 들어라.
그 순간, 하나님의 때는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