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향후 5년 내 국내 에너지 소비량을 소폭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에너지 효율 증진 기본 계획'을 공표했습니다.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가 과연 실현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5일, 주무 부처인 기후환경에너지부는 '제7차 에너지 효율 증진 기본계획'을 확정하여 발표했습니다. 부처는 최종 에너지 소비량 감소를 국가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2024년 기록된 최종 에너지 소비량 2억 1,200만 toe(석유환산톤)를 2029년까지 2억 1,100만 toe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 사용량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를 기준으로, 총 8.7%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2024년 GDP 100만 원당 0.092 toe의 에너지를 사용했던 것을 2029년에는 0.084 toe로 감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산업계의 현실적 우려…AI 발 전력 수요 급증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목표가 현실적인 타당성보다는 당위성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환경에너지부에 따르면, 이 같은 목표치는 2023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이 에너지 효율 개선 수준을 두 배로 높이겠다고 선언한 것에 따른 것입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장기 전망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 효율은 2029년까지 매년 0.9%씩 자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두 배로 상향 조정하면 정부의 목표치와 부합한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산업의 빠른 확산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계획의 현실성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및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가파른 상승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관별로 전망치에 차이가 있지만, 2030년에는 현재보다 약 3~4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460 TWh(테라와트시)였던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30년에는 1,000 TWh에서 2,000 TWh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역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2023년 60 GW(기가와트)에서 2028년에는 127 GW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1 GW가 대형 원자력 발전소 1기의 설비 용량과 맞먹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127 GW는 대형 원전 67기를 새로 건설해야 할 정도의 막대한 전력량에 해당합니다.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또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후환경에너지부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올해 8.2 TWh에서 2038년에는 30 TWh로 약 4배 가까이 증가할 전망입니다.
일반적으로 1 GW 규모의 원전 1기가 연간 10 TWh 내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나, 정비 기간 등을 감안하면 실제 발전량은 7~8 TWh에 그칩니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2038년까지 대형 원전 3기를 추가로 건설해야만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NVIDIA GPU 도입이 전력 소비에 미칠 영향
최근 엔비디아가 국내에 약 26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기로 한 사실 또한 전력 소비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GPU 한 장이 1,000W 수준의 전력을 소모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26만 장이 도입되면 260 MW(메가와트)에 달하는 전력을 소비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소규모 석탄화력발전소 1기에 준하는 전력 소모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기존 전력 수요 전망에 데이터센터의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더 나아가 기후 변화로 인한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을 고려할 때, 5년 뒤 에너지 소비량을 현재보다 줄이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현실적인 제약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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