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합격 후 시작된 또 다른 전쟁
2005년 서울대 약학대학에 입학한 박일섭씨(44세)는 누구보다 절실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공부 잘하게 해달라"던 어린 시절의 기도가 응답받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캠퍼스에서 마주한 현실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전교 1등만 모인 곳에서 그는 '중도인생'이라 불리며 매일 중앙도서관을 지켰다.
"모의고사 500점 만점자들 사이에서 390점이었던 제가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두 배는 공부해야 했습니다."
돈도 없고 연줄도 없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입학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던 그에게 80세 할머니는 비상금 300만원을 건넸다. "섭아, 할매는 널 믿는다"는 한마디와 함께. 이 돈은 단순한 학비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평생 모은 사랑이자, 손자에게 거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는 최우등 졸업으로 할머니의 기대에 보답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성적과 합격증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다는 것을. 그 빈자리의 이름은 '화목한 가정'이었다.
결혼 반대와 500만원 빚, 그럼에도 선택한 사랑
2010년, 신학교에서 만난 한 자매에게 그는 확신했다. "당신은 나의 이상형입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냉정했다. 조현병 환자인 아버지, 모아둔 재산 제로, 신학생 신분... "성급한 결혼"이라는 경고가 쏟아졌다.
결혼 준비 과정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친구 용이의 300만원, 송 약사님의 500만원 대출, 그리고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2,000만원. "하나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결혼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라는 기도가 응답받았다.
1,800원 분유값에 깨달은 아버지의 의미
2013년 첫 아들 출생. 산부인인과에서 1,800원 분유비를 계산하던 순간, 그는 멈칫했다. "이제 이것도 내가 내야 하는 거지?" 아내의 타박에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아들아, 아빠가 미안해." 작은 아기 앞에 엎드려 운 이유는 준비되지 않은 아버지로서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짐했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에게는 온전히 주겠다고.
아버지의 자해와 할머니의 유언
2021년, 아버지가 스스로를 해친 사건은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다. 경북대 응급실을 오가며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한편 치매로 손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할머니는 그를 "아저씨"라 부르며 차비를 달라 했다. 만원을 쥐어드리자 할머니는 "아저씨 고맙습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박 씨는 깨달았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일섭아, 네 아비를 부탁한다"가 유언이 되었다는 것을.
밤 9시 폐업과 저녁이 있는 삶
약국 운영 초기, 그는 새벽 1시까지 일했다. 매출을 위해 가족과의 저녁을 포기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깨달았다. "아내가 행복해했다. 10시 전에 집에 들어가니."
현재 서울드림약국의 영업시간은 밤 9시까지다. 매출은 줄었지만 가족과 함께 웃는 시간은 늘었다. "직장은 내 인생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내 삶과 가정을 지켜주는 버팀목이어야 한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5:17)
박일섭씨가 15년간의 결혼생활에서 찾은 답이다. 화목은 한 번의 성취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이었다. 새벽 기도, 아이들과의 놀이시간, 아내와의 심야 달리기... 작은 것들이 모여 가정을 지켰다.
"10년 후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고맙다. 10년 전의 나. 네가 지켜낸 진심 덕분에 지금의 가정이 있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