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는 평생을 교단에서 헌신하신 분이다. 6.25 전쟁 직후부터 정년 퇴임의 그날까지, 수많은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치셨다.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는 한평생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시며, 그 누구보다 묵직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셨다.
그런 어머니께서 올해 아흔두 살이 되셨다. 3년 전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홀로 남겨진 어머님께 치매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건망증이라 여겼던 증상들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진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 어머니는 낮과 밤의 경계도, 식사를 하셨는지의 여부도,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도 잊으셨다. 그저 우리 자녀들의 얼굴만을 간간이 알아보실 뿐이다.
며칠 전 새벽 2시, 어머니는 홀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셨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서 발견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 깊은 밤 거리를 얼마나 헤매셨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날 이후, 우리 자녀들은 교대로 어머니 댁을 찾아 밤을 지새우고 있다.
잠시라도 문단속을 소홀히 하면, 어머니는 "여기에 갇혔다"고 하시며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 하신다. 평생의 안식처였던 집이, 이제는 어머니께 가장 낯선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자녀들의 마음은 "속상함"과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치매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병이다. 한 사람의 고유한 역사이며 사랑의 모든 흔적이 담긴 '기억'이 사라질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물음 앞에 "나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슬픈 대답만이 강요된다.
한없이 연약해진 어머니의 모습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철저한 무력함을 직면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한 영혼을 끝까지 붙드실 수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복음의 위로가 아니라면,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을 설명할 어떤 답도 찾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치매를 비극이라고 말한다. 물론, 당사자와 그 가족이 아니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가슴 아픈 슬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이 시간이, 남겨진 가족에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언젠가 어머니께서 우리를 완전히 잊는 그날이 온다 해도, 우리 자녀들은 어머니를 그 누구보다 선명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어머니를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지키고 계심을 우리는 믿는다.
어머니를 돌보는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삶으로 드릴 수 있는 가장 깊고 진실한 예배의 순간일지 모른다. 고요한 새벽, 잠드신 어머니의 이불을 덮어드리는 그 손길은, 성전 제단에 피어오르던 향기로운 제사처럼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것이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주님께서 어머니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계시는 시간이다.
"주님, 이제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님께서 부르는 그 시간까지 부디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맑은 정신과 기억으로 지내게 해 주세요. 그래서, 자녀들을 향한 예전의 그 기도와 그 미소로 지내시다가, 어머니께서 그렇게 가고 싶으셨던 주님 곁으로 평안히 가게 하여 주세요.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