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1839년, 사진이 세상에 발표된 후 파리 화단에서는 이제 회화는 죽었다며 사진술이 회화의 영역을 위협한다고 인식이 퍼졌다. 빠르고 적은 비용으로 이미지를 재현할 수 있는 사진은 중산층 이하 계층까지 확산되었으나 회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진의 등장 덕분에 화가들은 인상주의처럼 현실 재현에서 벗어나 더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떠 한가?
완전히 차별적인 영역의 예술로 각각 자리잡고 있다. 지금의 AI는 마치 1800년대 사진처럼 지금 우리 일상의 중심으로 성큼 들어와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AI를 두려움의 렌즈로 보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너무 익숙해서 협력 가능성은 종종 배제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최선의 질문일까? AI는 이미 우리 곁에서, 인간과 함께 호흡하며 그 역할을 재편성하고 있다.
세계는 인간과 AI의 공존 실험 중
서비스산업에서는 AI 고객 응대, 민원 처리, 행정 백오피스, 개인 맞춤형 서비스 같은 분야에서 AI가 점점 더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싱가폴은 정부 민원 응대와 시민 문의에 챗봇을 도입해 24시간 자동 응답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공무원들은 반복적인 기본 응대를 벗어나 보다 복잡하고 정서적 민감성이 요구되는 상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세금 안내나 교통 관련 문의 같은 일상 행정 영역에 생성형 AI를 시범 적용하고 있다. 이 실험은 기술이 먼 미래가 아니라, 행정의 일상 속에 들어오고 있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미국의 승차공유기업인 Lyft은 AI 챗봇 및 자동화된 고객응대 시스템을 도입해 평균 고객 지원 처리 시간을 약 87 % 줄이기도 했다.
카타르는 국가 단위에서 AI 전환을 주도하는 상징적인 사례다. 정부는 미국 AI 스타트업과 손잡고 향후 5년간 50가지 이상의 AI 기반 공공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단순한 파일럿을 넘어서, 행정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는 프로젝트다.
한국 서비스현장에서도 AI는 이미 조용한 동료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진단보조 AI, 국민은행의 콜봇, 국민신문고의 민원 응대 챗봇은 인간의 역량을 보완하며, 더 빠르고 정교한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학교들 역시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추세인데 예컨대,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에서는 서비스경영전공에 처음으로 ‘AI와 서비스경영’ 과목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Gartner가 2024년에 발표한 리포트에서는 2025년까지 전 세계 고객 서비스 조직의 80%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인력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 예측한다. 미국 뉴욕 연준 조사에서는, AI를 활용한다고 응답한 서비스 기업 비율이 작년 25%에서 올해 40%로 급등했다는 결과도 나왔다. 단순 반복 노동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업무 구조 자체를 바꾸는 도구로 AI가 활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잘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인간과 어떻게 협업하게 설계했는가에 있다 하겠다.
불안의 그림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질문들
협력의 장면만큼이나 무시할 수 없는 건 위험과 불안이다.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누구에게 책임이 돌아갈까? 데이터에 숨겨진 편향은 특정 집단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AI로 인해 대체된 일자리의 빈자리는 어떻게 메워야 할까?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5년간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6,9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노동패널은 국내 일자리의 약 12% (약 341만 개)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단순한 감소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과거 기술 변화는 기능의 재배치를 의미해 왔다. 중요한 것은 대체가 아니라 전환된다는 것이다.
책임 소재의 불확실성도 크다. 의료·법률처럼 사람의 삶과 이해관계가 직결된 영역에서 AI 오류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EU의 AI 규제 체계는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인간 감독, 설명 가능성, 투명성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그런데 규제 강화가 기업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리고 편향의 문제. 데이터가 가진 구조적 한계는 AI 판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금융·채용·보험 등 민감 분야에서는 이 위험이 더 크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딥페이크, 개인정보 남용 등 악용 가능성도 현실적이다.
해외 제도 흐름이 던지는 기준점
유럽연합(EU)의 AI Act는 위험 중심(risk-based) 규제 프레임워크를 적용한다. AI 시스템을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으로 구분하고, 고위험 분야에는 설명 가능성, 인간 감독, 안전성 강화 등을 법으로 강제한다. 2025년부터는 일반 목적 AI 모델에도 투명성과 안전성 요구가 확대될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2025년 9월, 직장 내 AI 활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채용, 평가, 감시 등 AI의 직장 내 도입 맥락 전체를 엄격히 규율한다. 또한 아일랜드 정부는 EU 규제 실행을 위한 국가 AI 사무소를 설립하고 규제와 혁신을 조정하는 조직을 마련했다.
이들 사례는 단순 제재가 아니다. AI를 허용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규제는 고정된 벽이 아니어야 한다. 규제도 학습해야 한다. 법률, 인증, 감독 간 피드백 루프를 유지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학습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서비스산업과 공공서비스 그리고 AI
한국도 이제 AI 시대의 공공서비스 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할 때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형식적인 규제로 위기를 회피하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없다.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AI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안전성과 책임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관점과 실행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계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이다. 공공기관의 민원 응대, 콜센터, 보건 서비스 등 국민이 체감하는 영역부터 AI를 도입해 실증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투명하게 기록해야 한다. 성과가 우수한 기관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실패 사례는 학습 자원으로 축적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AI 시스템이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안전성 평가와 인증을 거치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가가 직접 혹은 독립 인증 기관을 통해 사전 검증하고, 고위험 시스템은 인증 없이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인증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재평가와 모니터링 체계가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규제 역시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AI 시스템은 그 위험도에 따라 구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의료, 금융, 사회복지처럼 사회적 파급력이 큰 분야는 특히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설명 가능성, 인간의 최종 판단 개입, 운영 투명성 등 핵심 원칙은 규제 설계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넷째, AI가 사용자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대에는 정보 제공과 인지 가능성도 중요하다. 사용자가 지금 마주한 응답이 사람의 것인지, 인공지능의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응답은 AI에 의해 생성되었습니다”라는 고지는 단순한 기술 안내가 아니라, 디지털 사회의 기본 권리이자 신뢰의 장치다. 또한 사용자가 AI 시스템에 오류를 보고하고, 그 피드백이 실제 개선에 반영되는 구조까지 이어져야 한다.
다섯째, AI로 인해 일자리가 바뀌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전환을 준비하는 교육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특히 AI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역량을 갖추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AI 활용 능력뿐 아니라, 윤리와 책임감을 중심으로 한 인간 고유의 판단력까지 함께 교육하는 것이 핵심이다. 앞으로는 AI와 협업하는 직무, 이를 검증하고 조율하는 역할도 새로운 일자리로 재편될 수 있다.
여섯째, 무엇보다도, AI 기술은 기술자만의 것이 아니다. 정책 입안자, 기업, 학계, 시민이 함께 설계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공동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 AI가 공공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민이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투명한 보고와 감사 체계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제사회가 논의 중인 AI 윤리 기준과 규범 체계에도 한국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글로벌 기준의 형성과 실행 모두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I의 핵심은 결국 데이터다. 양질의 데이터가 없으면 어떤 알고리즘도 공정하거나 정확할 수 없다. 공공과 민간이 데이터를 함께 공유하고, 상호 운용이 가능한 형태로 구조화하며, 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인프라와 생태계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API 개방,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 연계망, 중소기업과 지방정부를 위한 기술 진입 지원 등은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AI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에필로그: 질문을 남기며
AI는 우리에게 묻는다. "할 수 있는가?" 정책은 질문을 덧붙여야 한다.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AI는 무서운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규칙 아래 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비스 산업과 공공정책이 함께 길을 묻고, 그 길을 함께 닦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기술과 공존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앞으로의 방향은 단 하나, 설계의 책임, 공존의 의지다.
박윤주
경영학박사(서비스경영)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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