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함에 머무는 우리
최근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서울가요제’ 편은 많은 사람을 추억 속으로 데려갔다. 그 시절, TV 앞에서 가족과 함께 보던 무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명확한 가사. 복고의 편안함 속에서 유독 한 곡의 가사가 마음을 붙잡았다.
“세상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세상에 이처럼 많은 개성들, 저마다 자기가 옳다 말을 하고…” 예전엔 흘려듣던 가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나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인정하고 있을까?’ 그 질문은 곧 나 자신을 향했다. 타인의 다양성을 말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다양함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바로 ‘취향’이다. 내 플레이리스트는 여전히 2000년대 초반에 멈춰 있었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기보다 익숙한 멜로디만 반복해서 듣는 것은, 단지 음악을 향한 멈춤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을 잃어버린 내 삶의 둔감함을 드러내는 씁쓸한 단면이었다.
멈춰버린 호기심, 나이보다 먼저 늙는 마음
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저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31세 이후 인간의 뇌는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단순히 음악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는 뇌의 유연성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음악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점을 낯설어하게 되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방식이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 완고함은 타인을 틀리다고 단정짓고, 세상을 흑백으로 단순화시킨다.
‘핵개인의 시대’에서 고유함을 찾는 법
지금은 ‘집단’보다 ‘개인’이 중심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타인의 고유함을 인정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송길영은 ‘고유함이 생존력’이라고 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이야말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핵심 역량이다.
이제 권위를 앞세운 일방향 소통은 통하지 않는다. 조직과 사회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할 때 비로소 다양성이라는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라는 말이 따뜻해지려면, 그 안에 ‘나와 다름’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우연의 선물을 부르는 친절의 태도
물리학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에서 “연결은 예기치 않은 행운의 문을 연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우연의 선물(serendipity)’은 바로 관계에서 비롯된다. 다양성과 연결성이 줄어든 사회에는 행운이 머물 공간이 없다. 비슷한 생각만 소비하고,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릴수록 새로운 가능성은 사라지고 사회는 단조로워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송길영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사를 인용한다. "Be kind.“ 결국 중요한 건 ‘친절’이다. 그러나 “저 사람은 왜 저래?”,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와 같이, 우리의 일상 대화 속에는 판단이 너무나 빠르다.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습관이 쌓이면서, 사회는 점점 경직되고 '우연의 선물'은 사라지는 것이다.
친절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멈추는 데 있다. 무조건 상대에게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유연한 태도다. 연결의 본질은 동질성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불편함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할 때 사회는 비로소 진화한다. 건강한 개인주의는 이처럼 균형 잡힌 친절로 이어진다.
일상에서 유연함을 연습하는 법
완고함은 거대한 이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선택, 반복되는 습관이 쌓이면서 마음의 근육이 굳는다. 그래서 변화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매주 한 곡씩,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들어보자.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때,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어보자. 점심 식당을 고를 때 익숙한 곳 대신 처음 보는 가게를 선택해보자. 이 사소한 시도가 낯선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연다.
완고함에서 벗어나는 길
완고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확신이 아닌 의심이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지금의 옳음이 내일은 아닐 수도 있다. 의심은 불안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름을 향해 마음을 열 때 우리는 다시 젊어질 수 있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