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 예배를 다시 세우다
- - 히스기야가 보여준 진정한 회복의 리더십
아버지 아하스의 통치 아래 유다는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었다. 성전 문은 닫히고, 제사는 끊어졌다. 백성들은 우상 앞에 무릎 꿇었고, 예루살렘의 거리에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노래조차 사라졌다. 바로 그때, 젊은 왕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망가진 신앙의 토대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성전을 정결케 하고 제사를 회복한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개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의식’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분의 마음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한다. 히스기야의 개혁은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신앙의 본질을 되묻는 영적 거울이다.
히스기야는 즉위 첫해, 곧바로 유월절을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였다. 율법에 정한 정기 유월절을 지키기에는 제사장들이 준비되지 않았고, 백성들도 예루살렘으로 모일 여건이 되지 않았다. 형식에 얽매였다면 히스기야는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식의 정확성”보다 “의미의 충실함”을 선택했다. 그래서 신하들과 백성들과 상의한 끝에 유월절을 한 달 늦춰 지키기로 결정한다(대하 30:2).
이는 율법의 정신을 넘어선 ‘형식보다 본질’의 결단이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날짜와 절차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 앞에 돌아오는 백성을 기뻐하신다. 히스기야의 결단은 “예배의 시간보다 예배자의 마음이 먼저”라는 신앙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오늘날 교회가 형식에 매몰될 때, 히스기야의 선택은 시대를 넘어 울림을 준다.
히스기야의 시야는 예루살렘 성전의 경계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자를 보내어 북왕국 이스라엘 전역에 유월절 초청장을 보낸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한 상태였다. 많은 이들은 포로로 잡혀가거나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행사 참여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마음을 담은 초청장이었다. 정치적 계산이나 체제 통합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향한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히스기야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았다. 진정한 리더십은 언제나 경계를 넘어선다.
히스기야의 초청이 북이스라엘에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웃었다. “지금 그 상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라니!” 그들은 현실을 비웃으며 조롱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말씀에 겸손히 반응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비웃음과 냉소를 뚫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들의 걸음은 단순히 절기를 지키기 위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복을 향한 순종의 행진이었다. 믿음은 언제나 조롱 속에서도 피어난다. 하나님은 그런 작은 순종의 발걸음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시작하신다. 히스기야의 초청에 응답한 이들은 예배의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의 순종은 유다 전역에 “예배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으로 번져갔다.
히스기야의 개혁은 단순히 ‘종교 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마음을 품은 리더의 눈물이었다. 아버지 아하스 때 무너진 예배의 잔해를 바라보며, 그는 사람들의 타락보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백성을 그리워하셨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안정보다 ‘영적 회복’을 택했다.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확장을 꿈꾸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관심을 따라 확장되는 영적 리더십을 보여줬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품은 자’를 사용하신다. 히스기야의 개혁은 성전 정결, 절기 회복을 넘어, 하나님 마음을 이 땅에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단지 고대 유다의 종교 개혁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무너진 예배와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신앙의 모델이다.
그는 형식보다 본질을, 제도보다 마음을, 권력보다 하나님을 선택했다.
그가 북왕국까지 품었던 이유는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이런 히스기야적 리더십이다 —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회복의 리더십.
그 리더십은 성전의 문을 다시 열고, 닫혔던 예배의 노래를 다시 울려 퍼지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