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오해의 시작
대학 시절 학생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의 연락은 결혼식 사회를 부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퇴근 후 식당에서 마주 앉은 친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천아, 네가 제일 믿음직하다. 사회 좀 맡아줄 수 있을까?” 결혼식 사회 경험이 단 한 번뿐이었기에 부담스러웠지만, 결국 승낙했다. 친구의 신뢰에 보답하고 싶었다.
서로 다른 기준의 충돌
그날 이후 나는 사회자 대본을 차근히 준비했다. 7년 전 진행했던 결혼식의 분위기가 워낙 좋았기에, 자연스레 그때의 형식을 떠올렸다. 마무리 행진 전에 짧은 이벤트를 넣으면 분위기가 한층 밝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반응은 달랐다. “기천아, 이벤트 없이 그냥 행진하면 안 될까? 부담스러워서 그래.” 나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답했지만, 다음 날 친구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그는 장난스러운 이벤트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옳다고 믿은 경험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판단보다 필요한 것은 경청
그날 저녁,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켜서 대본을 다시 수정했다. 친구의 의견을 전면 반영해 장난스러운 부분을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오해가 없음을 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나도 미안하다. 내 입장만 생각했나 봐.” 그렇게 서로의 진심이 오가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단순했다. 판단보다 먼저 필요한 건 이해였고, 경험보다 앞서야 할 건 경청이었다.
사회적 맥락 속의 ‘섣부름’
현대사회는 속도가 빠르다. 생각보다 먼저 말하고, 들리기보다 보기만으로 결론을 내린다. 뉴스 한 줄, SNS의 짧은 영상, 타인의 말 한 조각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맥락 속에 있다. 섣부름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왜곡시킨다. 판단의 빠름이 지혜의 깊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한 걸음 멈추고,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태도야말로 관계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본이 아닐까.
함께 던지는 질문
누군가의 말, 행동, 표정을 보고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적은 없는가. “저 사람은 원래 그래.”, “그 일은 이렇게 됐을 거야.” 이런 생각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낳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판단의 빠름은 이해의 기회를 잃게 하고, 관계의 온기를 식힌다. 오늘 하루, 조금만 더 느리게 생각해보자. 그 사이에 진심이 보일지도 모른다.
경험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상대의 마음은 경청이 열어준다.
섣불리 판단했던 내 태도는 친구의 입장을 좁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더 단단한 신뢰가 생겼다. 결국 판단의 속도가 아니라 배려의 깊이가 관계를 지탱한다. 앞으로는 “내가 옳다”보다 “너는 어떠했니?”를 먼저 물어야겠다. 그 한마디가 오해를 막고, 관계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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