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 로봇 기술을 둘러싼 산업보안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개발하던 의료 로봇 관련 자료 빼돌린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로 기소된 중국인 A(43)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단독 서보민 판사는 지난 8월 27일 해당 혐의를 받는 A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저장한 파일 중 상당수는 이미 연구과정에서 다수 인원이 공유 및 학술 논문으로 발표된 자료로 보인다”며 “이를 영업비밀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자료 반출 행위가 병원 재산상 손해를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도 무죄로 봤다.
이에 검찰은 항소를 제기하며, “파일 중 일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내부 연구용 설계도 및 알고리즘으로, 영업비밀 성격이 명백하다”고 맞섰다.
A 씨 사건은 단순한 개인 범죄를 넘어 국가 의료기술의 보안 체계를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과 로봇을 융합한 수술보조·재활로봇 산업이 급성장하며, 의료 현장에서의 기술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인력 부족과 고령화로 로봇 의료기술은 국가 전략산업으로 부상했지만, 그만큼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첨단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통해 방어흫 강화지만, 의료기관이 주도하는 연구 영역은 보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A 씨는 2015년~2018년 4월까지 서울아산병원 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해당 연구소는 출입 시 신분 확인과 비밀번호 인증을 거쳐야 하며, 내부 이동은 CCTV로 기록됐다.
또한 연구원들에게는 퇴직 후에도 기밀 누설 금지 서약서를 받는 등 보안 절차를 엄격히 운영했다.
검찰은 A 씨가 2020년 2월 퇴사 직전, 연구용 컴퓨터에서 설계도면·동물실험 데이터·회의자료 등 1만2545개 파일을 유출해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파일의 내용과 사용 목적, 병원의 내부 보안 규정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영업비밀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의료계와 과학기술계 모두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
‘무죄’ 판단이 곧 기술보안이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AI, 로봇, 생명공학이 결합된 융복합 기술은 한 번 유출되면 추적이 어렵다”며, 법적 기준보다 앞선 기술보안 체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인천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정부 부처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첨단산업 기술 보호 대책을 재정비하고 있다.
특히 의료기기, 바이오, 로봇 등 신산업 분야 연구기관에 대한 보안관리 지침 강화와 ‘출입·저장·반출 로그 관리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의료기술 경쟁이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 이번 사건은 “기술의 경계가 곧 국가의 경계”라는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