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인공지능 시대, 한국의 공공정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딜로이트 6대 기술 트렌드를 중심으로 -

▲박동명/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기술은 더 이상 행정의 보조 수단이 아니다. 기술 그 자체가 정책의 구조를 바꾸고, 공공서비스의 품질을 좌우하며, 국민 신뢰의 조건을 재정의한다. 세계 최대 회계·컨설팅 그룹 딜로이트(Deloitte)Tech Trends 2025에서 향후 공공과 민간이 동시에 주목해야 할 6대 기술 트렌드를 제시하였다


이 프레임워크는 혁신을 견인하는 상승 동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반 동력으로 구분되며, 한국의 행정·정책 환경을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는 데 유용한 준거가 된다. 필자는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지방의회 강의 및 자문, 결산검사위원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여섯 가지 흐름을 우리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고자 한다.


1. 공간 컴퓨팅의 부상: 보고(報告)에서 현장(現場)으로


공간 컴퓨팅은 현실 공간을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하고 상호작용하게 하는 기술이다. 재난·치안·교통·환경·도시계획 등 공공영역 전반에서 즉시성을 갖는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 지자체는 그동안 보고서 중심의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사를 수행해 왔다. 이제는 현장 기반 3D 시각화 대시보드를 표준화하여, 예산 투입 전후의 변화를 한 화면에서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 도시재생·환경사업 점검 때 GIS를 접목하여 의사결정 시간을 단축하고 주민설득력을 높인 바 있다. 행정의 언어가 글에서 데이터로, 장소에서 디지털 트윈으로 확장되는 순간, 정책의 설득력은 배가된다.


[정책 제안]

첫째, ·광역 단위에 공간 데이터 거버넌스 센터를 설치한다. 둘째, 사업별 성과지표(KPI)에 공간 데이터 지표를 필수 반영한다. 셋째, 의회 상임위 회의장에 실시간 공간 대시보드를 도입하여 질의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높인다.


2. AI의 미래: 에이전트가 행정을 재구성한다


생성형 AI는 멀티모달·에이전트형으로 진화한다. 문서··이미지·음성·영상 등 복합 정보를 이해하여 사전 정의한 목표를 향해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지방의회와 집행부는 이미 조례안 초안 작성, 예산서 요약, 유사 지자체 비교, 행정사무감사 질의서 자동 생성 등에 AI를 시범 활용하고 있다. 필자가 진행한 ‘AI 활용 행정사무감사강의에서는 의원들이 실제로 AI에게 특정 부서 결산서의 이상치를 찾아내게 하고, 질의 흐름을 스크립트로 자동 정리하는 실습을 진행하였다. 결과는 명확하다. 반복 업무는 AI, 가치판단과 책임은 사람이 맡는 구조가 행정품질을 높인다.


[정책 제안]

첫째, ‘의회-집행부 공동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 둘째, 회계·계약·감사·복지 등 고빈도 업무에 맞춘 업무별 AI 프롬프트 표준집을 배포한다. 셋째, ‘의정 에이전트’(조례·예산·결산·감사 전용)의 베타 서비스를 구축하고, 개인정보 비식별·보안 체계를 병행한다.


3. 하드웨어의 시대: 디지털 주권은 인프라에서 시작한다


초고성능 반도체, 센서, 엣지 디바이스의 발전은 디지털 전환의 기반이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은 우리에게 공공 디지털 인프라의 내구성과 이중화가 국민 신뢰의 핵심임을 일깨웠다. 클라우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에지-클라우드 하이브리드가 재난·보건·통신·금융 등 핵심 서비스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정책 제안]

첫째, 중앙-지방 합동으로 핵심 행정서비스의 이원화·삼원화 복구 시나리오를 의무화한다. 둘째, 국산 보안칩·센서 도입 시 공공조달 가점을 부여하여 국내 하드웨어 생태계를 육성한다. 셋째, 보건·교통·환경 센서망을 표준화해 데이터의 상호운용성을 높인다.


4. 기술과 비즈니스의 융합: 모든 부서가 디지털 전략 부서가 된다.


딜로이트가 말하는 ‘Business of Technology’는 기술이 조직의 핵심 전략이라는 뜻이다. 우리 행정은 ICT 부서에 디지털을 전가해 왔다. 그러나 실제 변화를 만드는 곳은 업무 부서이며, 기술은 그들의 일상적 의사결정과 연결되어야 한다.


정책지원관 제도는 이러한 전환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정책지원관이 AI·데이터 리터러시를 갖추고, 업무 부서와 의회를 잇는 정책 해석자로 기능할 때, 기술은 비로소 제도 속으로 들어온다.


[정책 제안]

첫째, ‘부서-내 디지털 책임관(Digital Owner)’ 제도를 도입한다. 둘째, 성과계약서에 디지털 성과지표(업무시간 단축률, 오류감소율, 데이터 활용도 등)를 포함한다. 셋째, 조례·규칙 제정 시 '디지털 영향평가(Digital Impact Assessment)'를 시범 도입한다.


5. 사이버 보안과 신뢰: 데이터 권리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양자컴퓨팅의 진전은 기존 암호화 체계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공공은 보안 준수에서 신뢰 설계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행정데이터의 보안은 곧 행정의 정당성이다. 복지·보건·세무·교육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변조되면,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이 어렵다.


[정책 제안]

첫째, 장기적으로 양자내성암호(PQC) 전환 로드맵을 수립한다. 둘째,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부터 최소수집·가명처리를 기본값(default)으로 설계한다. 셋째, 지자체 단위 데이터 윤리위원회를 설치하여 민감정보 처리, AI 의사결정 설명가능성, 책임소재를 상시 검증한다.


6. 핵심 현대화: 행정의 전 과정을 데이터로 연결한다


핵심 현대화는 레거시 시스템을 AI-네이티브 구조로 다시 짜는 일이다. 예산편성-집행-결산-감사-환류의 전 과정을 데이터로 연결하고, 사람의 판단을 지원하는 의사결정 보조(Decision Support)를 표준화한다. 필자는 결산검사에서 부서별 성과지표의 불일치와 데이터 단절로 인한 비효율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데이터를 연결하고 지표를 정합화하면, 불필요한 예산은 자연히 드러난다.


[정책 제안]

첫째, 지방재정365·지방계약·복지보조금통합관리 등 분절된 시스템을 공통 데이터 계층으로 통합한다. 둘째, 성과지표를 법령·사업·예산 코드와 1:1 매핑하여 자동 검증한다. 셋째, ‘AI 결산검사 파일럿을 도입하여 이상치 탐지와 질의 초안을 자동 생성한다.


한국형 추진 원칙: 기술은 사람과 책임으로 완성된다


첫째, 원칙 기반 규제와 실험적 규제특례의 병행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보안의 큰 원칙은 지키되, 샌드박스를 통해 신속히 검증하고 확산한다.

둘째, 현장 중심 교육이 성패를 가른다. 의원·정책지원관·공무원을 대상으로 업무-결합형실습을 정례화한다.

셋째, 공공-민간-학계 협력이 상수여야 한다. 표준·윤리·보안·평가 체계는 단일 조직이 만들 수 없다.

넷째, 책임 윤리가 기술의 마지막 관문이다. AI가 제시한 답은 의견일 뿐이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에게 귀속된다. 이 원칙이 흔들리면, 기술은 쉽게 권위주의적 도구로 변질된다.


맺음말: 정책이 삶을 바꾸는 길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러나 올바르게 설계된 기술은 행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정책을 공정하게 하며, 국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꾼다. 필자가 여러 지방의회에서 AI 기반 행정사무감사·예산·결산 교육을 진행하며 확인한 바, 핵심은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작은 실천의 누적이다. 한 줄의 프롬프트, 한 장의 대시보드, 한 번의 데이터 검증이 현장을 바꾼다.


인공지능 시대의 한국 공공정책은 기술을 통치의 언어로, 신뢰를 거버넌스의 토대로 삼을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그 길의 이름은 명백하다. 정책이 삶을 바꾼다.


참고:

Deloitte, Tech Trends 2025 (2024.1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과학기술동향278(2024.12) 재구성.


(편집자주)

본 칼럼은 딜로이트(Deloitte)202412월 발표한 Tech Trends 20256대 기술 트렌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공공정책 및 지방자치 행정의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글이다. 발행인 박동명 선진사회정책연구원장은 의정현장과 결산검사, 행정사무감사 교육 등 현장 경험을 토대로 AI·공간 컴퓨팅·보안·핵심 현대화의 적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박동명

▷법학박사, (주)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국회의정연수원, 경기도의회 등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정활동" 주제 강의

▷(전)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국민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2025.10.19 02:39 수정 2025.11.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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